13장
貴以身爲天下者 若可寄天下 자기 몸같이 천하를 귀히 여기는 자는 그에게 천하를 맡길 만 하고
愛以身爲天下者 若可託天下 자기 몸같이 천하를 사랑하는 자는 가히 천하를 맡길 만 하다.
이 구절을 읽으니 생각나는 분이 두 분 계시다. 바로 예수와 부처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누추한 마굿간에 태어나,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부처는 샤카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그 영화로움을 버리고 7년 동안 보리수 나무 밑에서 구도하는 길을 택했다.
이들의 삶은 세속적인 영광은 버렸지만, 진실한 삶의 길을 따르면서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지금의 종교가 이들의 진실한 삶을 외면한채, 경배 내지 숭배의 대상으로만 받들고, 소원비는 것에만 치중한다면 우리나라 종교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노자를 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해체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오히려 노자를 자세히 읽어보면 하늘과 자연을 얘기하는 듯한 본체론적인 성격을 띤다. 노자의 道가 예수, 부처와도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이 구절이다.
79장
天道無親 常與善人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한 것이 없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모 교수의 책을 읽어보니, 이 구절을 공자의 친소(親召)나 친친(親親)관계와 반대되는 것으로, 노자의 도가 더 크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되었다. 서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惟天 無親 克敬 惟親 태갑 하 - 오직 하늘은 특정한 누구와 친한 것이 아니라 오직 공경하는 사람과 친할 뿐이다;
서경이라면 유가의 경전일터. 게다가 하늘이 착한 사람, 공경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얘기는 기독교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과 크게 다른 느낌이 안 난다.
이 구절들로 봐서는 노자는 해체론보다는 본체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기동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혈육과 가까운 이들에게 정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한다. 재밌는 것은 그 모 교수가 노자를 해체로 본다고 하면서, 책의 말미에는 자신의 부모님과 스승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힌다. 이러한 것만 봐도 가까운 이에게 마음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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