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증폭 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심리학자 김태형. 이 사람의 저서를 두 권 읽은 적 있다.
<심리학자, 정조를 분석하다>와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전자는 정조, 이이, 허균, 연산군 등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의 성격을 다루며, 인물들의 성격 형성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이들의 성격이 한국 역사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다.
후자는 노무현과 오바마, 한국과 미국의 두 개혁적 대통령들의 성격과 심리를 분석하며, 두 대통령의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건강한 자아가 어떻게 그들을 지도자로 이끌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두 책을 읽으면서 역사와 정치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엿볼 수 있어,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김태형은 고려대 심리학과를 나온 심리학자로서, 한동안 사회운동에 몰두한 적이 있다가 다시 심리학의 길로 되돌아왔다.
http://blog.naver.com/psythkim?Redirect=Log&logNo=60137122069 <- 심리학자 김태형의 블로그
심리학 서가를 보던 중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담긴 것 같았다.
한국 사회는 IMF 이후 집단적 불안과 공포 심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작가의 동창들이 모였다. 작가의 동창들은 거개가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잡고 가장이 된 사람들이었다. 헌데 이들의 표정은 모두 어둡고 걱정에 찌들어 있었다. 이때 작가가 한 마디 던졌다.
"너희들, 지금 행복하니?"
일순간 분위기는 무거운 정적만 감돌았다.
모든 세대가 불안하다.
청년들은 좋은 스펙 없이 번듯한 직장 잡기 힘들다. 대학 등록금도 채우지 못해 고생하는 학우들도 많다.
중년층들은 직장에서 밀려날까, 그 걱정으로 일에 더 매달린다.
그런가하면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매몰되어 공부기계가 되어간다.
급기야 민초들은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고 있다. 사불(四不)의 이유다.
첫째, 아이를 사랑할 시간이 없다. 맞벌이 부부들이 많다.
둘째, 아이를 키울 돈이 없다.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출생률은 1.72명인데,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 가구는 2.02명이다. 사교육비는 엄청나다.
셋째, 아이를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성교제를 통해 애정을 찾고자 하지만, 상대방도 애정결핍이어서 서로 간에 사랑은 주지 못하면서 받으려고만 하는 사랑싸움이 벌어진다.
넷째,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없다.
우리는 늘 경쟁을 한다. 학교에서부터 성적 순이고, 성적 순대로 대학을 가고, 스펙대로 취직을 하고, 직장을 잡아서도 경쟁, 자영업을 해도 경쟁, 그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간다. 여자들은 미모도 경쟁이다.
서울에서 집 한 채 장만하려면, 10년 이상 직장을 꾸준히 다녀서 모은 월급에서 왠만한 소비는 자제해야 한다. '아나바다'를 10년 이상 반복해야 서울에서 집 한채 얻을 수 있다.
경쟁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불안을 야기한다. 크게 놀라고 당황하는 것만이 불안은 아니다.
별로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상대방에게 계속 잽을 허용하는 권투선수는 머지않아 쓰러질 수 밖에 없다. 그런것처럼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는 우리의 내면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저자는 한국인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코드로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 등을 제시한다.
9가지 심리코드 속에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이것이 우리 주변의 이야기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류 심리학을 비판하면서, 이 책의 주된 의미는 개인의 정신병리 현상이 사회와 밀접하게 관련있다고 본다.
정신병의 원인 70%를 사회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70%라는 수치도 많이 양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주류 심리학이 인간을 돼지로 보는 것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인간이 동물과도 같은, 진화론적 전제를 깔고 있다.
가령 어느 학자는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여성의 결합을, 여성이 젊을 때만 아이를 낳으므로 사람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돈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젊은 여성과 결합하는 늙은 남성들은 돈이 많거나 재능이 뛰어나다.
가난하고 남루한 나이 많은 남자에겐 젊은 여자들이 대쉬를 안 할 것이다.
이를 사회적 맥락으로 봐야지, 진화심리학에 억지로 꿰어 맞춰서는 안 된다.
김태형 작가는 거침이 없고 우리 사회의 내면을 맹렬히 분석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론에 갇힌 전문가가 아닌 현실을 궤뚫어본 현인(賢人)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사회는 뭐라 그럴까, 가마솥이 끓고 있는 것을 억지로 막고 있는 형국 같아 보인다. 사람들의 불만, 불안은 누적되어 언제 터질지 모른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술과 오락, 섹스로, 사람들의 맺힌 내면을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를 감싸는 불안을 진단하고, 우리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다. 읽으면서 내 마음 속 응어리진 것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둘러보고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