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자유주의와 후설
시장은 완전한 자유경쟁을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있는 그대로의 경쟁 상태를 변형시키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시장경제의 정치적 귀결은 자유방임인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질서자유주의자들은 18-19세기의 자유주의 전통과 단절하게 됩니다. 경쟁은 자연적 소여가 아닙니다. 경쟁은 욕구나 본능이나 행동양식 등 자연적인 작용의 결과 따위가 아닙니다.
실제로 경쟁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 경쟁을 특징짓고 구성하는 본질로부터만 효과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경쟁 그것은 하나의 에이도스(경험적 직관이 아닌 본질적 직관)입니다.
" 경쟁의 효과들은 그런 논리가 존중되는 조건 아래에서만 산출됩니다! " 경쟁은 소위 여러 불평등 사이의 형식적 작용이지, 여러 개인과 여러 행동양식 사이의 작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설에게서 특정한 조건 없이는 형식적 구조가 직관에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본질적 경제 논리로서의 경쟁은 세심하고 인공적으로 정비된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나타나고 그 효과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쟁은 통치술의 역사적 목적이지, 존중해야만 하는 자연적 소여(판단양식)가 아닙니다. 이런 유형의 분석에서 발견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후설의 영향이며, 다소 베버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경제에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질서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 방임해야 될 시장의 작용은 없어지게 되고, 국가의 개입을 시작해야 할 영역도 없어지게 됩니다. 시장은 결국 통치 내에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장 때문에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위해 통치하게 됩니다.
출처 : 미셀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난장, 2012, pp.185~188
-> " 쉽게 말해, 경쟁은 자연적 조건은 아니다. 정치로 인해 시장은 조정되고 규제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케인스주의와도 약간은 다른 논리입니다. 후설의 논리도 질서자유주의에 들어가 있네요. 후설과 발터 오이켄의 아버지 루돌프 오이켄이 교류했다는 흔적도 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