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에 대해 평가하는 자료라 퍼옵니다....
지난해 11월 하순의 꽤 추웠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강원민방 GTB의 ‘열린광장’이란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 한 축구해설가(개인적으로 친분이 매우 두터움)를 따라 춘천으로 내려갔다. 당시 열린광장은 그 해 신생팀으로 K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몰고 왔던 강원FC의 주역들(김원동 사장, 최순호 감독, 김영후 선수)을 초청해 2009시즌을 결산 편을 녹화할 예정이었다. 개인적으론 때마침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던 김영후에게 비록 정식 인터뷰는 아니지만 약식 혹은 돌발성의 인터뷰로 몇 마디 얻어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춘천행을 결심했다.
실제 프로그램 녹화에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서 그리고 녹화가 끝나고 강원FC 구단 사무실에 들러 짧은 시간 얘기를 주고받은 게 전부였지만, 겉돌지 않고 내가 김영후에게서 정말 듣고 싶었던 알짜배기들은 그대로 얻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김원동 사장과 최순호 감독으로부터도 그간 프로축구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강원도에서 신생팀을 운영하며 겪었던 온갖 희로애락, 그리고 차마 언론을 통해 밝힐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철저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들을 수 있는 소중한 하루였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당시 내 춘천행의 초점은 김영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확실히 주워 담아야한다는 것에 맞춰져 있었지 그 이외의 얘기들은 정말 웃고 떠들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길게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목표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이 확정된 이 시점에서 작년 11월의 그 날을 돌아보면 그 이외의 얘기들이 단순히 웃고 떠들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게 놀랍다. 아니, 어떤 부분에선 ‘정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우연성에 그 어떤 필연성이 가미된 느낌이다.
바로 최순호 감독이 평가했던 조광래 감독과 그 조광래 감독의 작품이라는 경남FC말이다. 그 날 ‘감독’ 최순호는 역시 K리그 판에서 동업자로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감독’ 조광래의 축구에 대해 그간 내가 그리고 많은 축구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상이한 평가를 내렸다. 일단 여기서 나는 최감독에게 말 그대로 ‘한 방’ 먹었다. 그리고 ‘후배’로서 최순호는 ‘선배’ 조광래를 바라보며 느꼈던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피력했다.
“조광래식 축구의 핵심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있지!”

2009시즌 K리그 하반기 경남FC는 가히 파죽지세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6강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비록 두텁지 못한 선수층의 한계와 6강 진출 여부가 달린 시즌 마지막 경기의 상대로 하필 최강 전북이 걸리는 바람에 막판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분명 그 해 하반기 경남의 축구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했던 부분은 상암 원정경기로 치른 K리그 하반기 FC서울전이었다. 물론 결과는 1-2로 경남의 패배였다. 하지만 그 날 경기 내용은 서울보다 충실했으며 심지어 후반전 약 25분 가까이 홈팀을 상대로 반코트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요 몇 년 간 상암을 직접 찾아가 관전했던 K리그 경기들 가운데 홈팀 서울을 상대로 앞선 경기력을 펼친 팀들을 꼽자면 작년 파리아스의 포항 스틸러스, 올 해 상반기 최강희 감독의 전북현대, 그리고 작년 조광래 감독의 경남FC까지 딱 세 팀에 불과하다. 여기서 포항과 전북의 경우 선수단의 양과 질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이런 경기력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경남의 경우 이 두 팀들에 비해 여러모로 열악한 사정이기에 그의 기술축구와 전술축구가 보여줬던 위력은 상당히 놀라웠다.
열린광장 녹화가 끝난 후 그 날 저녁 강원FC 사무실에서 최순호 감독과 다과를 나누며 K리그 여러 팀들의 축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경남FC 차례가 오자, 나는 이런 경남의 기술축구와 전술축구를 종합해 조광래 감독이 꽤 재미있는 공격축구를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내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오는 순간 최순호 감독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귀엽다는 듯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단번에 정의를 내렸다.
『조광래식 축구는 공격축구가 아니라 수비축구지!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조직된, 마치 자기 현역 시절 보여줬던 플레이 스타일 그대로 말이야!』
그리고 경남FC 축구가 왜 수비축구인지, 자기 진영에서 어떤 식으로 그물을 쳐놓고 상대방 공격을 그 속으로 유도하는지, 그리고 K리그의 많은 팀들이 왜 그 그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듣자 마치 눈앞을 가리던 짙은 안개가 단번에 사라지고 명쾌한 시야가 확보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기껏해야 경기장 관중석에서 그리고 TV화면 앞에서 보는 축구가 전부인 나 같은 사람이, 젊은 시절 선수로서(더구나 그는 현역 시절 보통 선수가 아닌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선수이지 않았나) 그리고 은퇴 후 지도자로서 평생 축구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겐 백 날 떠들어봐야 역시 안 된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름 알량한 자존심은 있는지라 ‘감히’ 최감독에게 반박성 질문을 던졌다. 그럼 수비축구를 하는 팀들의 공통적인 고민인 상대의 볼을 빼앗은 후 공격 작업(혹은 역습)시 최전방과 측면의 숫자 부족으로 인한 포워드들이 고립되는 부분,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이미 우리 진영에서 압박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패스의 속도와 정확성이 떨어지는 이러한 약점을 왜 경남FC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또 한 번 최감독은 답답한 제자 깨우치려는 훈장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건 바로 조감독님의 수비 시 함정을 파놓는 방법에 있지. 그 함정의 핵심은 단순히 상대의 볼을 뺏기 위한 수비, 골을 안 먹기 위한 수비가 아니라 그 이후 공격전개 시 효과적인 루트 개척까지 다 계산에 넣은 수비조직 짜기라니까. 압박한다고 단순히 볼 가진 상대 공격수를 전진 못하게 두 세 명이 프레싱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빼앗은 볼을 매끄럽게 전개하도록 어떤 지점에서 어떤 형태와 강도로 할지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들 간 철저히 약속된 압박이야. 조직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거든. 특정 공간에서 이런 게 이뤄지면 부분전술이 되는 것이고 이걸 그라운드 전체로 적용시키면 팀 전술이지. 이게 잘 되는 팀은 조직적인 팀이란 평가를 받는 것이고, 조직적인 팀을 만드는 감독이 바로 전술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거야.』
결국 확고한 수비의 틀을 우선적으로 짜놓고 그 안에서 공격에서 수비로,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매끄러운 전환이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매끄러우려면 두 가지 요소가 구비돼야 하는데 첫 째는 매 순간 효율적인 압박의 위치와 강도를 감독의 시시콜콜한 지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깨우치며 실행할 수 있는 머리요, 둘째는 소유한 볼을 매끄럽게 전개할 수 있는 기술이라 했다.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그가 물망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사령탑으로 공식 확정된 어제까지 ‘조광래식 축구’를 격찬하며 모든 언론들이 동원한 지능과 기술이라는 단어는 이미 작년에 최순호 감독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나왔다.
최감독은 그 해 리그에서 경남과 두 번 붙으면서 이런 조감독의 치밀한 수비 조직력과 정교한 공격루트 개척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또 하나 묘한 얘기를 덧붙였다.
『이런 스타일의 감독이야말로 대표팀엔 적격이지. 일단 수비가 탄탄하고 역습이 빠르고 정교하다는 건 대표팀처럼 내용보다는 승점 3점이 최우선인 경기를 치러야 하는 팀에 좋은 성적을 보장하거든. 만약 저 양반에게 당장 청소년대표팀 정도의 팀을 한 번 맡겨봐. 기똥찬 팀이 나올 거야. 현재 나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어떤 연령대의 대표팀이건 벌써 한 번은 지휘봉을 잡았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이 양반이 너무 협회와 척을 지고 있으니......』
바로 ‘후배’ 최순호가 ‘선배’ 조광래를 바라보며 느꼈던 축구의 질적인 측면에 대한 기대와 지도자로서 더더욱 입신양명할 수 있는 지름길을 외면하고 가시밭길을 걷는 안타까움이 동시에 묻어나는 탄식이었다.
최순호 감독을 통해 느꼈던 축구인들과의 또 하나의 괴리감
대표팀 차기 사령탑 선정 작업이 난항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축구팬들과 일부 언론은 협회 기술위원회가 들먹인 조건들 가운데 ‘연령대는 50대’라는 부분에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실제 향후 4년간 한국대표팀을 한층 발전시킬 바로 그 적임자라면 연령대가 40대면 어떻고 50대 심지어 60대면 어떤가.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 선임을 실제 주도하는 기술위원들을 포함한 축구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공서열이 있고 그것에 따른 장기간 축적된 경험이 당장 현장에서 보여주는 지도력만큼 대표팀 감독 선정에 있어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이미 최순호 감독마저 작년 나와의 대화에서 조광래 감독에 대해 “지금이 딱 국가대표팀 지휘봉에 도전해 볼만한 연령대”라고 했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축구 지도자가 걸어야 할 코스와 그 코스를 걸으면서 맞이해야 하는 몇 차례 주요 전환점(각급 연령대 대표팀 지휘봉)이 축구인들 사이에 특정 시간대와 연령대로 암묵적이지만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우리들은 대표팀 감독이 될 사람의 연령대를 정해놓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우리보다 축구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경기인 출신 축구인들의 생각과 감은 또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록 황선홍, 홍명보, 신태용, 서정원, 김태영, 하석주, 김도훈 등 차세대 지도자들이 현장에서 긍정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고 자신들의 선배인 50대 지도자들에게 실력으로 거센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지만, 이들은 좀 더 여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이들 40대 지도자들을 아낄 필요가 있다. 분명 이들은 현재 50대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 이상을 빠르면 4년 늦어도 10년 후엔 각급 대표팀과 K리그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번 국가대표팀 조광래 감독 인선에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 일단 ‘국내파 지도자로 50대의 나이에 이왕이면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는 기술위원회가 내걸은 조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기 짝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선정 작업 자체도 매끄럽지 못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게다가 조감독의 지도력은 나름 인정한다 해도 K리그 무대에서 번번이 물의를 일으켰던 그의 인성(지도자로서의 품격)에 대해선 지극히 부정적이다.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훌륭한 품격은 어쩌면 기본 중의 기본 아니던가.
물론 조감독이 경남FC 감독으로 K리그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 감독으로 향후 아시안컵이나 컨페더레이션스컵, 월드컵 본선에서 부정확한 심판 판정에 격분해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이고 경기 속개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심판에게 폭행을 가할 듯 달려드는 그런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만에 하나 그런 짓을 했다간 아무리 그 이전까지 대표팀 성적이 좋아도 당장 지휘봉을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리그팬으로선 서글픈 얘기지만 어쨌든 대표팀이 한국축구의 꽃이고 그 꽃을 가슴에 단 사람은 당장 오늘부턴 조광래 감독이기 때문이다. 탁월한 전술력과 용병술 뿐 아니라 평소의 사소한 언행마저도 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제 오늘 새로운 대표팀 감독의 공식 취임식이 예정되어 있고 식이 끝나면 언론의 표현 그대로 ‘조광래호’가 출범한다. 최순호 감독의 평가 그대로 탄탄한 수비 조직력에 정확하고 끊이지 않는 패스가 기반이 된 매끄러운 공격 작업을 대표팀에 성공적으로 이식하길 바란다. 이 모두가 한국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수준과의 분명한 격차를 절감한 부분이고, 어제 조감독의 말대로 언젠가 한국축구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결승전에서 싸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부디 그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하며 당장 8월 나이지리아전을 시작으로 향후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각종 단기 이벤트에서 착실한 성적을 내는 조광래호가 되길 기대한다. 실제 그래야만 최순호 감독이라는 전문 축구인의 높은 벽에 좌절한 ‘일반인’인 나의 슬픔이 조금은 덜 할 것 같다.
[출처] '후배' 최순호가 평가했던 '선배' 조광래|작성자 축구선수를 꿈꾸다((홍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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