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내의 충돌> 책머리글을 읽고나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강경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얼핏 보면 우리는 서구인들과 말도, 행동, 음식도 다르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인은 100년전의 한국인보다도 서구인과 유사하다. 서구인들과 우리는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살고 있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생존경쟁을 벌인다는 점, 개인의 욕망과 행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란 책을 내면서 화제를 끌었다. 냉전이 사라진 자리에 서구, 이슬람, 유교, 힌두교, 불교 문명권이 대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2001년에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결을 예언하는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이 책의 문제점은 현상만을 설명하고 있다. 서구 문명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기독교-유대교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일견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세계의 대부분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였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공적으로 자본주의에 안착하였다. 한국,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였고, 중국은 정치적으론 사회주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 역시 IT 인재와 과학적 기반을 갖춘 나라로서, 자본주의의 맹아로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스마트폰 판매가 급증하며,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낙후된 자신들의 국가를 변화시키고자 모색 중이다.
더군다나 이슬람 국가들도 자본주의를 자신의 풍토에 받아들였다. 이자를 받지 않는 금융방식과 수쿠크 채권 같은 이슬람 특유의 전통에 체화시켰다. 게다가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공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을 듣는다.
새뮤얼 헌팅턴의 논의는 문화적 상부구조만 보고 있지, 경제적 하부구조를 전혀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 내의 충돌’이다. 전통과 현대, 집단주의적 가치와 개인주의적 가치가 빚어내는 충돌이 사회를 복잡하게, 때론 불안정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우리는 성악설보다 성선설을 좋아하고,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나누는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강화될수록, 더욱 더 개인주의적이고 욕망을 추구하는 쪽으로 한국인의 심성이 변하고 있다.
가령, 결혼식의 폐백과 예단은 우리나라의 전통이지만, 어느 때부턴가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고 있다. 본래는 새로 출발하는 부부를 축하하기 위한 양가 부모들의 의식이었는데, 무언가 집안 간의 경제력 차이 내지 과시하는 문제가 생기면서 의미가 변질된 것 같고, 부담스러운 의식이 되버렸다. 폐백의 예는 현대 사회가 전통을 변질시키는 예다.
반면에 전통이 현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을 때도 있다. 우리는 지연, 혈연, 학연 등을 중요시여긴다. 연줄이 있는 사람을 챙겨주는 것이 한국인의 심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줄은 공정한 의사결정을 왜곡시키고, 연줄에 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불이익이 돌아오게 만든다. 특히 정치권이 이러한 연줄을 이용해 한 자리를 해먹고, 갈등을 증폭시켜왔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전통과 현대의 단층선에서 빚어내는 파열음을 크게 내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인 한국답지도 못하고, 합리적인 서구답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있다.
서구는 분명 비서구 문명권에 많은 해악을 끼쳤다. 여러 국가를 식민지로 삼고, 자원을 착취하고 노동력을 징발했으며, 비서구 민중이 교육,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구우월주의적인 잣대로 비서구를 바라보며, 비서구 국가들을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서구가 인류에 주는 혜택도 컸다. 서구인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들은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한 합리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서구인들의 사고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인문학과 문화예술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분명 서구만큼 자신의 문명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성찰하는 문화권은 드물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고 개성을 존중하는데 있어서는 서구만큼 진보된 문명권은 없다.
서구는 인류를 자유롭게, 의지적으로, 합리적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합리주의에 대한 지성적 위기를 지적하는 지식인들이 많아졌다. 하이데거를 시작으로, 사르트르, 푸코, 들뢰즈를 거쳐 데리다의 해체 담론에서 서구 문명의 해체 논의는 절정에 이른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자성론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는 양극화로 초래되는 사회의 위기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서구의 민주주의만큼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유의지를 발현시키는 가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유신을 외쳤지만 독재로 귀결되었고, 북한은 ‘주체 사상’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사회주의를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인민을 억압하고 있다.
서구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성급한 부정은 전통의 회복이 아니라 전통을 왜곡, 변질시켰다.
서구 문명은 인간의 이성을 통한 권리와 개성을 증진시킨다. 이러한 서구 문명의 틀 속에 비서구 문명권들이 갖고 있는 신 또는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공동체 지향의 정신이 융합되면 어떨까?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조금은 사람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서구 문명의 이성과 합리의 틀을 가져가되 각자 문화권의 전통의 본질적인 장점을 융화시켜 창조적인 문명을 건설할 수 없을까? 세계는 이러한 물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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