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1]‘인문학 꽃’이 피었습니다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2]삶에 진지한 대답이거나 비즈니스 수단이거나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3]나는 인문학과 바람나고 싶다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4]잡스를 불러볼까? 샌델을 만나볼까?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5]인간에 대한 타는 목마름 ‘인문학 바다’로 풍덩
2011.03.14 778호 주간동아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1]
‘인문학 꽃’이 피었습니다
강의실에만 머물다 거리와 사람들 사이로
이설 기자 / 구희언 기자
#제1막 | 2005년 즈음, 인문학 열풍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바람은 두 곳으로부터 불어왔다. 하나는 대학 강단 인문학과 대별되는 대안 인문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경영계였다. 연구에 매몰된 채 대중과 괴리된 인문학을 비판하며 상아탑 밖으로 독립한 대안 인문 공간. 그리고 경쟁 격화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고 인간을 연구하기 시작한 경제·경영계. 지향점은 달랐지만 이들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핫 키워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2막 |2011년, 유행처럼 번진 인문학 열풍은 다시금 묘한 기류 변화를 맞고 있다. ‘꼭대기에서 이따금 불던 살랑바람’이 ‘위아래를 아우르며 매일같이 몰아치는 강풍’으로 바뀐 것이다. 서울대를 시작으로 속속 개설된 인문학 위주 최고위과정, 인문학도를 선호하는 취업 트렌드, 5년 사이 2배로 불어난 대안 인문 공간, 교양 과정을 강화하는 대학 등이 그 예다. 현재 인문학은 크게 강단 인문학, 강단 밖의 재야 인문학, 경제·경영계 등의 제3 인문학으로 나뉜다. 발아기를 지나 부흥기를 맞은 인문학 현장 곳곳을 취재한 뒤 인문학의 새판짜기를 살펴봤다.
경제·경영-CEO에서 말단 직원까지 “올해 신입사원 10~15%가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다. 신입사원 교육 과정도 인문학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인문학도를 거의 뽑지 않았다.”(현대건설 홍보실 박원철 과장)
취업 시즌이 되면 경제·경영 전공 대학생의 주가는 오르곤 했다.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경제·경영을 제2 전공 혹은 복수 전공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의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이런 열기는 더해갔다.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에 철학이 부흥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좋은 학점을 받아 전과하려는 게 목적이었다”는 한 사립대 철학교수의 말이 당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은 찬밥 신세였다. 영어영문학·중어중문학 등 ‘쓸모 있는’ 외국어문학 전공자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았지만, 비인기 외국어문학·철학·사학 전공자는 ‘취포자’(취업포기자) 취급을 받았다. 부모 세대는 “문·사·철을 모르면 되나”라고 혀를 차면서도 자녀의 취업 성공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추세다. 2010년 현대건설 관리·사무파트 신입사원 30명 중 15명, 2011년 43명 중 13명이 순수 인문계열 전공자다. 원래는 경제·경영·법학과 출신이 100%였다. 현대건설은 올해에도 신입사원 10~15%를 인문·사회계열에서 뽑았다. 현대건설의 이런 채용 풍토 변화는 김중겸 사장에게서 비롯한다. 다음은 박원철 과장의 설명.
“사장이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경영자를 위해 서울대·고려대 등이 개설한 인문학 과정을 대부분 들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직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려고 노력한다. 이따금 직원들과 뮤지컬 보고 미술관에 함께 간다. 이는 건설사 업무가 단순 시공에서 포괄적이고 다양한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안 인문 공간-다양화·세분화로 체질 개선 현대건설 외에도 기업문화에 인문학이 자리한 기업이 상당수다. 롯데백화점 홍보팀 이경수 대리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지난해부터 서울대 인문대와 협의해 임원 대상으로 단체 인문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교보문고와 연계해 직원들에게 연 12만 원씩 책을 구입할 수 있게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책읽기 운동’으로 유명한 우림건설은 매달 2, 3번 인문학 강의인 ‘우림 목요특강’을 실시하는데, 외부인에게도 강의를 개방한다.
기업의 인문학 도입은 경영자가 바람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삼성경제연구소(SERI)로 대표되는 CEO 대상 인문학 강연 기관이 최근 5년 사이 폭증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07년 서울대 인문대의 ‘인문대 최고지도자 과정(AFP)’과 고려대 박물관의 ‘문화예술 최고위과정(APCA)’, 2008년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의 ‘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 2010년 국립극장과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이 연계한 ‘전통예술 최고경영자 과정’ 등이 잇따라 개설됐다. 한 AFP 졸업생은 “AFP는 6개월에 수강료가 1000만 원이 넘지만 경쟁률이 3대 1이 넘는다. CEO의 인문학 공부는 이미 트렌드가 됐다. 이들은 본인이 접한 인문학을 기업에 전파하거나 경영에 활용할 방법을 고민한다”라고 귀띔했다.
“대학 인문학은 배움을 등한시하고 연구에만 치중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에 대한 비판에서 대안 인문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철학아카데미 김진영 상임위원)
10여 년 전 대학 인문학이 위기에 빠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아탑 밖에서는 일종의 ‘재야’ 인문학이 싹을 틔웠다. 인문학 본연의 인간 중심 비판정신을 잃어버린 강단 인문학에 회의를 느낀 젊은 인문학자들이 독립체를 꾸린 것이다. 2000년 ‘철학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수유+너머’와 ‘문예아카데미’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대안 인문 공간은 학문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며 대중 인문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비싼 학비와 높은 문턱으로 인문학을 접하기 힘들었던 대중이 속속 대안 공간의 문을 두드렸다. 학문의 세분화·전문화 경향과 대학 정치에 염증을 느낀 학자들도 이곳에 둥지를 텄다. 경희대 도정일 명예교수는 “30년 전부터 시작된 전문화 경향으로 대학의 인문학 정신이 흐려졌다. 오늘날 ‘재야 인문학 운동’은 그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설명.
“과거 인문대 교수는 공공지식인의 역할을 했다. 인문학자로 철학·문학을 공부하면서 사회·대중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한데 연구영역이 세분화되면서 공공지식을 아우르는 교육자가 사라졌다. 자기 전공 전문분야에만 몰두하니 대중 교육을 할 능력이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그 나름의 영역을 개척해온 대안 인문 공간은 지난 5년 사이 급격히 늘어났다. ‘철학아카데미’ ‘수유+너머’ ‘문지문화원 사이’ ‘다중지성의 정원’ ‘KT·G 상상마당’ ‘독서대학 르네21’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시민예술학교’ ‘예술의전당 예술아카데미’ 등 주요 인문 공간만 10여 군데. 각종 세미나 클럽과 지역 공간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대학·지방자치단체-눈높이 낮춰 친근하게
각 공간은 개성이 다르다. 인문학자들에 따르면 ‘철학아카데미’는 다양한 전공을 넘나드는 철학 강의를 선보인다. ‘수유+너머’는 자생적 연구 공간으로 대안 인문 공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은 온·오프라인에서 풍부한 문화 강의를 제공하고, ‘KT·G 상상마당’은 인문학 강의뿐 아니라 미술, 음악 등 실용 강의도 제공한다.
대안 공간이 늘어난 배경에 대해서는 2가지 시각이 공존한다. 한 인문학자는 “다양한 전공의 공급자(강사)와 다른 취향의 수용자(대중)가 만나 대안 공간의 커리큘럼이 날로 풍부해졌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 인식이 일반화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희대 영어학부 민승기 겸임교수는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시도 차원에서 소규모 공간이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7, 8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대학원생 수요가 많아 대형 강의가 가능했는데,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감소하면서 수강생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인문 정신의 핵심은 4가지다.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역사에 대한, 문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그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학 인문학은 인문 정신을 놓은 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대안 인문 공간과 경제·경영계 열풍에 이어 대학가에도 뒤늦게 인문학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3월 9일 오후 경희대에서 만난 도정일 명예교수가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책상 위에는 ‘후마니타스’ 관련 책과 자료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경희대는 올해 교양학사 학위를 주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개설했다. 모든 재학생의 필수 이수 교양강좌도 강화했다. 도 교수가 보여준 필수과목 교재 ‘인간의 가치 탐색’ 목차는 ‘삶의 의미와 무의미’ ‘우리의 초상’ ‘문명의 문법’ 등 묵직한 주제로 가득했다.
경희대뿐 아니다. 지난해 대학가의 최대 화두는 ‘학부 교양교육 강화’였다. 1970년대 이후 대학은 교육보다 연구 실적에 치중했다. 대학 순위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건 눈에 보이는 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도 교육보다 연구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최근 대학 역할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교양교육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의 ‘학부교육선진화 선도대학’ 지원 사업도 이를 부채질했다.
‘풀뿌리 인문학’ 열기도 거세다. ‘풀뿌리 인문학’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강의나 노숙인을 돕는 강의 등을 아우르는 말로, 지난 5년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인문학 트렌드를 발 빠르게 포착한 서울 강남구부터 시작해 지금은 거의 모든 기초자치단체가 상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다.
“2009년부터 마포구평생학습센터에서 하는 ‘마포열린강좌’에서 꾸준히 강의를 듣고 있다. 예술, 철학 분야의 다양한 강의가 구비돼 있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주부 김옥순(54) 씨. 그는 음악과 책을 사랑하는 문학소녀였지만, 가족 뒷바라지에 치여 ‘영혼과 관련된 취미생활’은 잊고 살았다. 한데 ‘마포열린강좌’를 안 뒤에는 생활이 180도 달라졌다. 그는 “남편과 고등학교 2학년 아들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나서 듣는 강의는 꿀맛”이라며 “지자체 강의는 거리가 가깝고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없다”라고 말했다.
‘풀뿌리 인문학’은 대학과 지자체 등이 연계해 무섭게 바람을 일으켰다. 서울 관악구는 서울대, 마포구는 ‘문지문화원 사이’와 손잡고 강사와 커리큘럼을 수급한다. 직접 인기 강사를 초빙하는 강남구의 ‘상상너머 창조의 수요 인문학’ 특강은 고정 수강생만 100명이 넘는다.
지금의 인문학 바람을 바라보는 인문학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관심과 수요가 늘어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주객이 전도돼 인문학이 트렌디한 것으로 변질될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변화의 지점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도정일 교수는 “영혼도 보살피면서 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 아울러 인문학이 사고력, 판단력,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궁극적으로 국격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인식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 여세를 몰아 적극적으로 인문학을 부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2]
삶에 진지한 대답이거나 비즈니스 수단이거나
우리 시대 인문학자 2명이 본 빛과 그림자
“인문학의 다각화를 적극 환영” 깨어나 보니 밀폐된 공간이다. 창문도 없고, 사방이 벽이다. 눈앞은 뿌옇게 흐리다. 둘러보니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여기는 어디지? 난 언제부터, 왜 여기에 있지?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는 배 안이고, 이 배는 미국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얼마 후 다른 사람을 만났다. 이 배는 미국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으로 간다고 했다. 그 후에도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배의 행선지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나? 그러나 누구의 의견이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 개중에는 배가 목적지도 없이 떠돌고 있으며, 언젠가는 난파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많은 소문 속에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같이 지내던 사람이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지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는 그들이 배 밖으로 나가 익사했을 거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그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다른 배로 갈아탔다고도 했다. 우리는 여기 잠깐 머물다 그곳에서 영원히 산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사라지나? 그렇다면 어디로 가나? 도무지 알 수 없다.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몇 년 전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전문 사서를 위한 강의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 인문학이 뭔지를 구조와 역사라는 틀에 담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막막했다. 강의를 구상하면서, 내 이력을 되짚어보았다. 대학 시절부터 그때까지 내 삶의 대부분은 강의를 듣거나 강의를 하고, 세미나와 학회에 참여해 발표하고 토론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로 채워졌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인문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니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다는 건, 결국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풀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문했다. ‘내가 무슨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내가 이런 삶을 결심한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이냐?
당시 나를 지배하던 질문은 ‘난 누구며, 왜 사는가?’였다. 내가 찾은 대답은 ‘내가 누구며 왜 사는지를 알아내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을 책에서 찾았다. 철학·문학·역사를 비롯해 다양한 책을 읽었고, 곰곰이 따져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강의하고, 학회에서 발표하고 책에 담을 글을 쓰는 일을 열심히 했다. 그것이 내 일상이며, 내 생계수단이자 생존방식이 됐다. 이런 삶을 인문학자의 삶이라고 한다면, 인문학(人文學)이란 결국 ‘인간이 무엇이며 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人), 다양하고 중요한 문헌을 통해(文), 배우고 가르치는 학문적인 행위(學)’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런 결심 후, 내가 정성껏 다뤄온 문헌이 이른바 고전(古典)이다. 고전이란 인류가 생산한 무수한 문헌자료 중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것으로 역사의 검증을 거쳐 선택, 보전돼온 최고급 문헌이다. 그 속엔 역사상 뛰어난 통찰력을 보인 사람들이 찾아낸 인간과 사회, 역사의 비밀이 암호처럼 담겨 있다.
난 그 암호를 풀어내 내 삶의 지표로 삼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을 맡고 있다. 이를테면 난 밀폐된 배 안에 떠도는 수많은 소문과 그 기록을 수집·검토·분석해 평가한 뒤, 가장 그럴듯한 의견을 골라 소개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배의 정체와 목적지에 관해 불안해하며,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내겐 큰 변화가 생겼다. 난 내가 맡은 일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한정되고 규정되는 전문직일 거라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의 상당 부분이 깨졌다.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며, 대학을 거점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꾸리면서 삶의 의미와 생계수단을 찾았던 나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대학 강단보다 대학 바깥의 공간에서 강의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방송국, 박물관 등에서 마련한 인문학 강연에서 대규모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백화점 등의 문화센터나 사설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만난 소수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소중한 기회였다.
현실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학문 무엇보다 독특한 목적을 갖고 모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통해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남다른 사연을 안고 거리를 안식처 삼아 사는 노숙인들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함께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삶의 결이 두텁게 겹쳐져 단단한 켜를 이루고 있었다. 누가 과연 삶의 영웅인가? 내가 전공서적을 뒤적이며 다듬었던 해석은 깔끔했지만 인위적이었다면, 그들의 질문은 투박했지만 싱싱했고 그 뜻은 깊었다. 명예나 권력, 부가 아니라 목숨 바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죽는 게 진정 영웅이 아니냐는 질문의 울림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어느 날엔 아침 7시에 국회의사당에 간 적도 있다. 몇몇 국회위원과 플라톤의 ‘국가’를 함께했다. 텍스트에 대한 내 해석이 다소 관념적으로 뜨자 ‘지금의 구체적인 현실에 어떤 정치적 지침을 줄 수 있느냐’는 절박하고 치열한 질문을 해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의 모임에서 ‘정의와 이익 추구의 문제가 충돌할 때, 플라톤은 어떤 유효한 답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찔했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정치도, 사업도 잘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었다. 난 젊은 시절에 가졌던 삶에 대한 절박함을 잃고 대학의 연구실과 강의실이라는 온실 같은 공간에서 논문과 연구서에 파묻혀 개념적인 학술놀이를 즐겨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했다.
책 이전에 그 속에 담길 삶이 분명히 있다. 그 삶의 치열함이, 솔직함이 없는 책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의 고전을 섭렵하고 깊이 연구했다며 어깨에 힘주고 세상 다 아는 듯 뻐길 일이 아니다. 우리는, 밀폐된 배 안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사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 귀에 솔깃한 그럴듯한 소문에 기대어 살아간다. 소문을 다룬다는 전문가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 소문 중 무엇이 옳은 것이지, 우린 알 수 없다. 인간의 인식론적인 한계에도, 누군가 권력을 독점하고 자기 의견으로 다른 소문을 억압하려 한다면 우리 삶의 공간은 반감과 분쟁으로 가득할 것이다. 다양한 청중에게 맞춰진 인문학적 강좌의 다각화는 그와 같은 혼란을 제거해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새롭게 품는 희망이며 질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한 삶을 살아내고, 의미를 추구한다. 사람들은 사는 만큼의 사연으로 엮인 한 권의 책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인문학자로서 책을 보며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의 다양한, 그 싱싱한 삶을 보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나의 독서와 연구는 텅 빌 것이라 직감했다. 그 공허함이 습성으로 굳어질 때, 인문학은 위기에 빠지고 인문학자는 무능력하게 고립될 것이다. 인문학은 소수 학자의 전유물이어선 안 된다.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을 이해하고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난 다양한 사람과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인문학 강좌의 확산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함께 배를 타고 삶의 대양을 항해하는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새롭게 모색한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구지향적·상업적 열풍은 가라!” 모든 사람이 인문학 열풍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이 힘이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인문학 비즈니스만 하는 이도 있고, 교양으로 전락한 인문학이 되레 인문정신을 흐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식을 넘어 실천으로 가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인문학 정신,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우선 필자는 인문학 열풍에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서구적 근대화 지향 국가로, 아직 인문학 정신의 고양이 상당 부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문학 열풍은 ‘참다운 인문학의 고양’을 위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인문학 열풍 현상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당위적 요청을 정리하고자 한다.
현재의 인문학 열풍이 인문학 정신의 고양에 부응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선행돼야 한다.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인문학 개념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문학이란 낱말은 일본어다. 19세기 일본 학자들이 ‘humanitas’를 번역하면서 만든 신한어(新漢語) ‘人文學’의 우리말 발음이다. 역사적으로 인문학이란 ‘신에 대한 탐구’에 비견되는 르네상스 시기 새로운 학문으로서 ‘인간에 대한 탐구’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문학은 다름 아닌 ‘인간학’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오늘 우리의 참다운 인문학 정신’은 현실을 더욱 인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인식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적 인문학 실종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인문학 열풍은 지나치게 서구 지향적이다. 서구적 지식과 인문학적 깊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참다운 우리의 인문학은 서구적 지식의 무비판적인 수입이 아닌, 그러한 체계에 대한 우리의 주체적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동양적 편향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비주의식 정신 혹은 체질요법에 대한 무비판적 찬양은 피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청되는 인간의 새로운 이해란, 기존의 동서양 혹은 ‘제3세계’라는 구분 자체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식이어야 한다. 서구 문명의 성과를 충분히 수용·인식하면서, 기존 논의가 지닌 제국주의적 함의를 피하는 보편적인 이해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이론적 수준이 아닌 현실적인 부분은 어떨까. 먼저 현재의 인문학 열풍은 상업주의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물론 인문학 지식의 상업화는 필연적인 면이 있다. 이 때문에 그 자체로 폄하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한 ‘상업화’와 구별되는, 상업적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주의적’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경향은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건강한 수요를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또 다른 장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또 다른 문제
‘효율성’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트렌드다. 하지만 인간의 참다운 이해를 모토로 하는 인문학마저 비판 없이 이를 추종하는 행태는 모순이다. 한국은 이제 1970년대 박정희 류의 ‘하면 된다’식 논리로 작동하는 개발도상국가가 아니다. 고도의 정보화, 민주화가 요구되는 첨단산업사회로 접어든 준(準)선진국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기존의 ‘효율성 일변도’ 논리가 우리나라의 참다운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은 우리 기업이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미국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이 짜놓은 판을 뒤흔들 능력은 없다는 냉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은 효율성에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이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수업으로만 가능하다.
인문학 열풍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역시 사회적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문제다. 인문학을 배우겠다는 최고경영자(CEO)들의 노력은 물론 칭찬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 지향적 기업을 가능케 할 참다운 투자와 이노베이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채 개인과 자신의 기업만을 배타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인문학 배우기는 새로운 인문학적 기복신앙이나 다름없다.
참다운 인문적 기업철학은 이기주의에 함몰되지도 않으며 사회적 기업의 사명을 잊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기복신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유사 기복신앙적 인문학은 기존하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나의 문제며, 내가 나의 성격을 의지로써 고쳐야 한다’는 식의 ‘성격개조’ 담론과 결합, 사회 유지 및 통제 기제로서의 개인주의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통해 기업문화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의 인문학이 이러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직업적 인문학 장사꾼이나 참다운 인문학적 비전에 대한 대중의 무지와 결탁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인문학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인간이 고통과 무지의 숲을 헤매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허경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3]
나는 인문학과 바람나고 싶다
초심자 위한 인문학 강좌 맛보기
5년 전쯤 싹을 틔운 인문학 미풍(微風)이 태풍(颱風)으로 치닫고 있다. 서점가에 비치된 ‘000 인문학’만 수십 종. 대안 인문 공간뿐 아니라 대학과 지방자치단체도 경쟁하듯 대중 인문학 강의를 선보인다. 이쯤 되면 인문학 모르고 잘 먹고 잘 살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이런 생각을 할 법하다. ‘가까운 곳에서 하는 인문학 강의, 나도 한번 들어볼까?’
하지만 선뜻 인문학과 첫인사를 트기란 쉽지 않다. ‘시간낭비가 아닐까’ ‘교실과 담 쌓은 세월이 얼만데 어색하진 않을까’. 괜한 걱정과 어색함에 관심을 접기 일쑤. 무엇보다 무슨 강의를 들을지 막막하다. 이럴 때는 스테디셀러 강의부터 살피는 것이 정석.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판 앞에서 눈이 뱅뱅 도는 심정으로 주요 대안 인문 공간에 물었다. “꾸준한 인기 강의 좀 추천해주세요.”
‘철학아카데미’ ‘수유+너머’ ‘문지문화원 사이’ ‘다중지성의 정원’ ‘KT·G 상상마당’ ‘독서대학 르네21’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시민예술학교’ ‘예술의전당 예술아카데미’ 등에 문의한 결과를 토대로 인기 강의 목록을 꾸렸다. 그중 취재 시기가 맞되 기자 개인이 관심 있는 강의를 추렸다. ‘철학아카데미’와 ‘수유+너머’는 일정상 강의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인문학 강의뿐 아니라 사진, 영상, 사운드 등 트렌디한 강의가 다수 개설된 ‘KT·G 상상마당’에서는 2개의 강의를 들었다.
“잊고 있던 학구열에 불붙은 기분이다.” “강의 듣다가 코 골 뻔했다.” “비워내는 취재만 하다가 채우는 취재를 하니 뿌듯하다.” “나한테 질문할까봐 살 떨렸다.” 기자 4명의 청강 후기는 제각각. 하지만 모두들 비밀을 숨긴 소년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초심자를 위한 ‘인문학 맛보기 가이드’를 소개한다. 이설 기자
잘 읽고 잘 떠들었는데 저마다 글쓰기 실력이 쑥 ‘수상한 냄새’가 났다. 3월 7일 오후 7시 20분, 서울 마포구 동교동 KT·G 상상마당의 한 강의실. 강의 시작 10분 전 수강생이 속속 도착했지만 서로 간단한 인사만 나눌 뿐 각자 책읽기에 바쁘다. 삭막한 분위기에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고민하는 사이 강사 이권우(48) 씨가 들어왔다. 이씨가 “책 좀 어렵게 읽었느냐”는 인사말을 던지자 다들 고개를 들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글쓰기 강의 ‘수상한 독서클럽’은 책을 읽고 그 책을 소재로 글을 써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회생활에 쫓기는 수강생들은 수업 시작 전 한 페이지라도 더 읽으려고 애를 쓴다.
이날 제8강 수업 교재는 역사학자 오항녕 씨가 지은 ‘조선의 힘’이다. 이씨는 “500년을 버틴 조선이란 나라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라며 책의 안팎 배경지식과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일방적 강의는 여기서 끝. 이제부터는 수강생들이 이끌어나갔다. 호텔 홍보실 직원, 직업 모델, 구청 세무과 직원,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강생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강의실에 도착한 뒤에야 몇 장 읽은 수강생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대부분을 읽고 온 수강생까지, 책을 읽은 분량은 다양했지만 저마다 할 말이 많았다.
2장까지 읽어 온 수강생은 “줄까지 치며 열심히 읽었다. 어려울까 겁먹었는데 변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던 조선의 내면을 볼 수 있어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유학과 관련된 책을 더 읽어보라. 책을 많이 읽으면 기존에 읽었던 책도 다시 보이고 깊이도 더할 수 있다”며 몇 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는 책을 함께 읽으며 “지적 혼란이 일어난다”고 호소하는 수강생에게도 “더 깊이 빠져보라”며 독서욕을 이끌어냈다.
수강생들이 각자의 감상을 털어놓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웃음이 터졌다. 자신이 미처 못 본 부분을 다른 수강생을 통해 찾은 발견의 희열과, 같은 부분에 시선이 머문 공감의 기쁨 덕분이다. 감상을 나누는 시간은 무척 중요하다. 이씨는 “말문이 트여야 글문이 트인다. 어떤 글을 쓸지 말할 때 글 쓰는 일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자발적으로 교양과 지식의 결핍을 채우고 열심히 쓰고 있었다. 한 수강생은 1기부터 4기까지 1년가량 이 수업을 들었다. 이 수강생은 “좋아하거나 필요한 책만 읽으며 편식했는데, 독서 가이드를 받으니 시행착오를 줄여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다”며 강좌를 추천했다. 주 1회 수업, 10강에 20만 원. 박훈상 기자
‘수상한 독서클럽’ 이권우 씨 지적 갈증 채우기 ‘자발성의 힘’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죽도록 책만 읽는’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등. 자타 공인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의 저작이다. 그는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뒤 안양대 교양학부 강의교수로 일했다. 대학 공간을 박차고 나온 뒤 대중을 대상으로 ‘전작주의’ ‘겹쳐 읽기’ ‘느리게 깊이 읽기’ 등 독서법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 책을 어디까지 읽어 왔는지 꼼꼼하게 묻던데? 주로 젊은 직장인이 수강하는데, 이들은 책읽기를 멀리하는 젊은 세대, 바쁜 직장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책읽기가 좋은 걸 알지만 일 부담 때문에 읽지 못하는 이들이기에 어느 정도 강제성을 주고 있다. 읽지 못한 부분에서 꼭 찾아볼 부분을 일러주는 것도 바쁜 일상에 대한 배려다. 수업 서두에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배경 설명은 책을 읽고 온 사람에게는 전체를 조감할 수 있게 하고 안 읽은 사람에겐 책에 전제된 관점을 알고 읽게 해주기 때문이다.
▼ 대중인문학이 나아갈 길은? 우리 사회는 인간을 ‘기능에 충실한 밥그릇’으로 만들어왔다. 이제는 양, 물질에서 행복, 가치, 성찰을 담는 질적 변화를 꾀할 때다. 나라나 사회가 이 일을 해야 했는데 사람들이 대중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자발적으로 이런 문화와 실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제는 공공영역에서 보도블록만 깔 게 아니라 그 돈으로 대중인문학 강의를 늘리는 상상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문학자에게도 꼭 대학 안이 아니라 대학 밖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 수강생들의 실력이 정말 늘어나나. 자발성의 힘이 대단하다.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대학생과 자세가 다르다. 또 삶의 경험, 고민에서 쌓인 교양이 잠재된 수준도 높다. 지적 갈증을 느끼고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 찾아오기에 실력들이 빠르게 늘어난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
국내 詩와 철학자 연결 무릎 탁 치는 사유의 여행 몇 개째를 집어보아도 놓였던 자리가 썩어 있지 않으면 벌레가 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도 집기만 하면 썩어갔다.
현대인의 절망 의식을 자주 다룬 것으로 유명한 김종삼(1921~1984) 시인의 1953년 등단 작품 ‘원정(園丁)’을 낭독하던 강사 강신주(43) 씨. 차분하게 시를 읽다 마지막 부분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시인의 정서를 가졌다고 느끼는 사람 손 들어봐요. 자기가 세상의 온갖 불행을 몰고 오는 것 같다는 사람 있잖아요. 김종삼은 멀쩡한 것도 자기가 집기만 하면 썩어간다고 하죠. 어떤 느낌인지 알겠죠?”
가슴에 딱 와닿는 강사의 언변에 수강생들이 연방 고개를 끄덕인다. 수강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 30대 여성은 저마다 시에서 받은 느낌을 얘기한다.
“약간은 저하고도 통하는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뭐든 잘못될까봐 애써 피하고 싶고, 뭐 그런 감정?”
“정말 공감해요. 저는 물건 살 때마다 문제가 있는 제품이 배달돼요. ‘이제 시를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네요.”
‘KT·G 상상마당’의 금요일 저녁 인문학 강좌인 ‘철학과 놀기’의 강의실은 이처럼 매주 시끄럽다. 시를 하나 골라 특정한 단락이나 문구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데, 그 과정에서 강사와 수강생이 혼연일체가 된다. 강사와 수강생은 시에서 느낀 감정을 안고 외국의 한 철학자에게 시선을 모은다. 강좌가 왜 ‘철학과 시가 부르는 사유의 노래’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강씨는 국내 시와 외국의 철학자를 절묘하게 연결하면서 강의를 재개한다.
“‘집기만 하면 썩어간다’는 구절에서 전 블랑쇼가 떠올라요. 그는 죽음을 정복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블랑쇼는 ‘인간이란 바깥(죽음)과 직면할 때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이해했던 사람이죠. 그렇다면 김종삼 시인이 시에서 드러낸 자괴감이 이해가 갑니까?”
프랑스의 소설·철학 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1907~2003)는 문학을 인간 존재의 ‘깊은 곳’을 탐구하는 행위로 파악하고 끊임없이 죽음과의 접근을 시도한 인물이다. 수강생들은 유명한 그의 ‘존재론’ 강의를 들으면서 이미 시인 김종삼이 돼 있다. 그러고는 금세 시인의 시가 ‘존재론’보다 더 예리하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여러분, 아름다운 여인을 보다가 늙어가는 여인을 보면 더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거, 뭔지 알죠. ‘아주 쿨한’ 김종삼 시인의 의식이 이해 가나요?”
수강생들은 다시 끝없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주 1회 수업, 10강에 20만 원.
유재영 기자
‘철학과 놀기’ 강신주 씨 시의 보편성, 철학의 개념 함께 이해
“연애, 시련, 죽음 이런 것에 대한 철학적 문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선 어떤 논리도, 진리도 전부 답이에요. 이것을 갖고 놀면서 상처가 나도 자신을 치유할 수 없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철학, 삶을 만나다’의 저자로 동아일보에 ‘철학으로 세상읽기’를 연재하는 강신주 씨는 삶의 전 과정에 필요한 만병통치약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한다. 그는 철학을 쉽게 삶으로 투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로 시를 택한다. 철학과 시가 어우러진 강의가 탄생한 계기다.
▼ 왜 철학과 시인가. “철학적 문맥을 제공하는 데 시를 함께 선택한 것은 시인의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인문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시인과 철학자가 바다를 본다면 시인은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바다 밑을 본다. 즉, 주관적인 판단을 하고 객관적인 성찰을 한다. 철학자는 바다를 보면 먼저 육지에서 그물을 만든다. 물고기를 잡고 그물코의 이상 유무를 살핀다. 그런 다음 ‘이거다’라는 느낌을 갖는다. 이것을 ‘크로스’시키는 것이다. 시의 보편성, 철학자의 개성과 시선을 함께 이해하자는 것이다.”
▼ 강의 도중 자기 고민을 서슴없이 털어놓는 수강생이 많다. “자기 상처를 알아야 남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난 과감하게 고민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그렇게 얘기하면 상처가 객관화된다. 그럼 냉정하게 고민의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다.”
▼ 인문학이 열풍이지만, 뒤에서 반성하는 인문학자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시인은 있지만 우리 철학자는 없다. 외국 철학을 들여다가 남 얘기처럼 말하고, 그걸 암기시키고…. 넓게 보면 직업적 인문학자만 많았던 것이 위기를 부른 이유다. 반성해야 한다. 인문학자는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고민을 풀게 할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먹고사니즘 잠시 내려놓고 한 달에 한 권 고전 읽기 “어, 이 수업 별거 없는데. 학생은 여기 왜 왔어? 학교를 가야지. 마을버스 타고 오는 사람들만 강의를 들을 수 있어요.” 강사 강유원(49) 씨가 입을 열자 수강생들의 웃음이 터졌다. 3월 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강씨가 ‘강유원 박사의 인문고전 강의’ 첫 강의를 시작했다. 수강생 대부분은 집안일을 끝내고 온 주부지만, 학구열에 불타는 ‘빡빡머리’ 젊은 남성, 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젊은 여성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경기 부천시에서 온 사람도 있다.
수강생은 한 달에 고전 한 권씩 강씨의 도움을 받아 읽어나간다. 강씨가 고전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 등을 짚어준다. 다루는 작품은 ‘일리아스’ ‘안티고네’ ‘니코마코스 윤리학’ ‘신곡’ 등. 이름만 들어도 골치가 아픈 고전이지만 정작 강의는 개그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그는 다양한 수준의 수강생을 때론 웃게 만들면서 어려운 고전의 세계로 능숙하게 인도했다. 그가 칠판에 ‘necessary and useful’이라고 쓴 뒤 강의의 목적을 힘주어 말했다.
“주부님들 이 강의 듣는다고 아이 논술에는 도움 안 돼요. 오직 내 인생 빛나게 하는 데 도움 될 뿐입니다. 이제는 먹고사니즘을 넘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마이크도 없지만 강씨 목소리는 울림이 컸다. 그의 말에 수강생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첫 교재인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옮긴 ‘일리아스’의 책값은 3만3000원이다. 그는 “비싸면 안 사도 된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참여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야 한다. 결국 3만3000원 아끼려는 사람밖에 더 되겠느냐”고 했다.
본격적인 일리아스 강의에 들어갔다. 강씨가 2800여 년 전 트로이전쟁을 다룬 일리아스를 선택한 이유는 이 작품이 서양 문학의 출발점이기 때문. 그는 고전의 내용을 차분히 설명하다가도 비유를 할 때는 확 치고 나갔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가리켜 “쉽게 말하면 양아치”라고 표현했다. 일리아스는 소리 내어 읽어야 할 책이라며 직접 큰 소리로 읽는 시범도 보여줬다.
강씨는 “이런 책이 있구나 알아만 둬도 좋다”고 겸손히 말했지만, 수강생들은 책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수강생 정덕화(37) 씨도 “수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좋은 선생님이 맥을 짚어주니 고전에 대한 부담도 줄었다”며 활짝 웃었다. 주 1회 수업, 4강에 2만 원, 수강 인원은 40명.
박훈상 기자
‘인문고전 강의’ 강유원 씨 사람 이야기 문제 제기만으로 충분
강유원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강의, 글쓰기, 번역 작업을 통해 대중의 교양을 높이고 지식을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강단에 오르는 ‘회사원 철학자’였다. 개인 홈페이지에 철학 관련 자료도 공개한다.
▼ 일반 사람들이 고전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나 먹고사니즘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지면 하는 일이 없다. 인문학을 진정한 소프트웨어 산업이라 하는데, 이는 틀렸다. 단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고 또 사람의 한계가 어딘지, 살고 있는 영역이 과연 전부인지 묻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 주로 도서관에서 강연하는 이유는? 도서관은 무료거나 출석을 압박하는 수준의 돈만 받는다. 도서관 강연은 80명, 120명 대단위 규모다. 주부도 많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다. 무상복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밥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제 구청, 시청 등이 나서야 할 때다.
▼ 동네 양아치부터 인기 드라마까지 고전을 설명하며 드는 예시가 과감하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인문학자는 정작 사람에 관심이 없다. 주부들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아들이 사귀는 여자를 못마땅해할 게 아니라 남자와 안 사귀는 것을 고마워하자”고 말한다. 실제 하는 이야기를 강의에 담는 것이다. 나도 ‘어려움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강연에선 일단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발전과 이데올로기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요? “오늘 여러분이 읽어 오신 그람시의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의 정의, 정당 역할, 문화연합의 개념과 필요성 등에서 문제 제기하실 분 있나요?”
3월 8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서교동 ‘다중지성정원’ 건물.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1891~1937)의 철학을 강의하는 조정환(56,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 씨는 15㎡ 겨우 넘을 듯한 강의실에 모인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강생들은 이미 1시간 30분가량 그람시의 책 ‘옥중수고 이전’과 ‘옥중수고2’ 일부를 나눠 내용을 요약하고 발표한 상태다. 이날 강의 시간에 다루는 내용만 책 100쪽 분량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수강생들은 자기가 맡은 부분을 사전에 요약해보고, 강의 땐 전체 내용을 속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강의에선 ‘돌민’이라는 예명을 쓰는 한 남학생이 밝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딱딱한 철학, 이데올로기 이론 수업을 받는 강의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소다.
“행복해서 한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그람시가 지식인을 정의하는 부분이 정말 구절구절 마음에 들어서요. ‘지식인은 사회적 헤게모니와 정치적 통치의 하위 기능을 수행하는 지배집단의 대리인이다’란 구절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어요. 그런데 그람시가 이 점을 근거로 ‘국가기구는 능동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동의하지 않는 집단을 합법적으로 징계하는 강제력을 행사한다’고 뽑아낸 구절을 보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쳤습니다. 아, 행복해요.”
수강생들이 돌민 님의 ‘돌출’ 의견에 한바탕 웃었다. 조씨도 미소를 지으며 “그람시는 자신이 내린 정의와 이론을 세밀한 부분까지 확장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한 여성 수강자도 “조국 서울대(법학) 교수는 최근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읽는 책 가운데 그람시 저서가 있다고 말했어요”라고 받아쳤다.
그람시는 사회 발전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기계론적으로 철학을 적용하는 일을 무척 꺼렸던 이론가로 알려졌다. 다중지성의 정원 그람시 강좌의 방식도 그 연장선에 있다. 수강생들이 그람시의 정서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문필가, 과학자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식인이 특수 사회계급의 두뇌이자 조직자인 유기적 지식인으로 이동하는 건 우리 시대에서도 큰 의미가 있어요. 음, 앵커를 하다 정당에 입문하거나 성직자가 직접 정치에 몸담는….” 현실과 어우러져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람시 강좌는 그날 밤 계속됐다. 주 1회 수업, 10강에 10만 원. 유재영 기자
‘그람시’ 조정환 씨 혼란스러운 현실 극복 적응력 키울 것
“그람시가 치열하게 했던 고민, 고뇌의 과정을 이해하면서 지금 시대를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얻는 기회라고 봅니다.”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조정환 씨에게 그람시 강의는 단순한 심화학습의 장이 아니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를 진화시킨 그람시가 ‘실질적 포섭 시대’로 표현한, 즉 자본에 점점 ‘포섭되고’ 있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누구든지 극복할 수 있는 적응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람시의 철학과 그의 저서는 분명 고전이지만, 현실의 해법이다. 이 때문에 조씨는 고전을 인문학 ‘정중앙’에 둔다.
▼ 인문학 열풍이 분다.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일까. “인문학 열풍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한 개인이 수많은 정보와 관계를 맺는 복잡한 상황에서 고전으로 사상의 혼란 상태를 벗어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같은 대중지성의 시대에 고전을 접목해 사람들을 지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 학교가 아닌 대안 공간, 지성 공간에서 인문학 강좌가 활성화되고 있다. “대학이 학생들의 취업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인문학이 가장 먼저 잘려나갔다. 인문학의 축소, 아니 포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학 외부의 공간이 그 몫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 인문학 열풍의 특징이 있다면. “1999년, 2000년 들어 철학아카데미 강좌가 생겨나는 등 실험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이것이 음악, 예술 등과 연계돼 붐으로 번졌다. 학교에선 인위적으로 학문을 가르치려다 보니 강좌가 형식화됐다. 결국 수백만 원씩 등록금을 내며 수업을 듣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사람 모두 부담을 느꼈다. 이젠 정말 공부하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 인문학을 찾는다. ‘학점 이수’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학문 자체가 어려워도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 의지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즐겨라’라는 명령요? 초자아가 내립니다 3월 4일 오후 6시 50분경.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복합문화공간 ‘문지문화원 사이’ 3층 강의실에 수강생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각기 자리를 잡은 뒤 가방에서 국어사전 두께의 책을 꺼냈다. 책 표지에는 ‘시차적 관점’이란 제목이 쓰여 있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은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면서 책을 탐독했다.
강사 민승기(50) 씨의 ‘지젝 읽기: 시차적 관점’ 9번째 강의. 이날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 ‘시차적 관점’ 중 ‘정치적 범주로서의 주이상스(jouissance·쾌락)’ 부분을 강독하는 시간이었다. 민씨가 화이트보드에 ‘관용’이라는 글씨를 큼직하게 쓴 뒤 말문을 열었다.
“관용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커피를 마셔도 좋지만 카페인은 먹지 마라’ ‘콜라 중 다이어트 코크만 마셔라’ 같은 식이죠. 혁명은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지만, 사상자 없이 혁명하겠다는 겁니다. 자유주의의 문제는 불가능성의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다양성으로 불가능성을 숨긴다는 것입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리는 세계적 석학이다. 인문학 강의, 840여 쪽의 두툼한 책, 거기에 지젝까지. 저자가 라캉과 데리다를 불러다놓고 희롱하며 강의 내내 ‘젝젝거리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민씨는 적절한 비유를 섞어가며 강독 수업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텅 빈 공간’의 개념을 설명하고 구제역 이야기를 하며 ‘냉소주의’에 대한 설명을 해나갔다. 그가 다시 ‘초자아’ 개념을 설명했다.
“초자아는 우리에게 ‘즐겨라(Enjoy)’라고 명령합니다. 이 말, 코카콜라를 사면 볼 수 있죠? ‘즐겨라’가 명령이 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래서 코카콜라가 자본주의 상품의 대표 격이고요.”
강의는 예정보다 길어져 밤 11시가 다 돼서 끝났다. 놀랍게도 졸거나 딴짓하는 수강생은 한 명도 없었다. 책 귀퉁이에는 하나같이 깨알 같은 글씨의 주석이 달렸다. 기자는 수업 내내 갈증을 느꼈다. 커피와 콜라 이야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가슴속의 텅 빈 공간을 인문학의 정수로 메우려는 욕구 때문이리라. 주 1회 수업, 10강 20만 원. 구희언 기자
‘지젝 읽기:시차적 관점’ 민승기 씨 현실 속 결핍이나 저항 가능성 경계 탐색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나는 평생을 문학과 철학 사이에서 서성거려왔다”고 말했다. 민승기(50) 씨도 그 사이에서 긴 시간 ‘서성거려온’ 인물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인 그는 철학자 라캉과 데리다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없어진 문예아카데미에서 2000년경부터 철학과 문학이론을 강의하며 인문학 강사로 나섰다. 그의 강의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강독 수업이라 그전 수강자가 다시 듣기도 한다.
▼ 문화원에서 주로 어떤 수업을 해왔나. 지젝이나 데리다 같은 철학자는 문학과 철학, 예술과 철학 등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사유를 이야기한다. 거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 자체가 탄탄하게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실 속의 결핍된 지점이나 ‘텅 빈 곳’, 현실에 저항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경계’를 탐색한다는 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 텍스트 강독 수업 방식을 택한 이유가 뭔가. 철학자가 뭘 말하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텍스트를 통해 사유하는 방식, 읽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그를 통해 상품화될 수 없는 가치를 읽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일종의 텍스트다.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사유 방식을 길러야 한다. 삶을 변화시키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읽기를 통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 인문학이 현대사회에서 갖는 가치를 어떻게 보나. 우리 시대는 ‘왜’라는 질문이 생략된 시대다. ‘왜’라는 질문을 하면 멈춰 서야 하는데, 그러기에 현대인은 너무 바쁘다. 인문학은 ‘왜’라는 질문을 상기시킨다. 그러면 ‘중지’의 순간이 생기고, 그 순간이 새로운 변화를 만든다. 어쩌면 혼돈이자 구원의 지점인지도 모른다. 고통스럽지만 환희에 찬 이중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인문학의 효용성이다.
사라져가는 슬픔 구출 세월과 사진 속으로 순간 이동 “누군가의 존재, 빛바랜 인간관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생애 작은 고독이 있습니다. 순간순간 경험하거나 감각했지만 금세 사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런 존재를 구출하는 게 바로 사진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쾌한 설명, 일상을 휘젓는 날카로운 해석. 3월 3일 저녁 7시 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강사 김진영(59) 씨의 ‘사랑, 죽음, 그리고 사진’을 들으며 모호한 단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김 선생님 수업만 따라다니는 수강생도 있다”는 관계자 말이 이해가 갔다.
‘사랑, 죽음, 그리고 사진’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저서 ‘카메라 루시다’의 강독 수업. 김씨는 바르트의 지적 여정을 가로지르며 책에 담긴 함의를 삶 속에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카메라 루시다’는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사진 에세이로, 수강생 10여 명은 한 단어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강의에 몰입했다.
“사진은 시간의 포화상태입니다. 그때 그 시간이 그대로 사진에 꽉 들어차 있는 거죠. 바르트는 사진 속 어머니를 구출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데서 ‘깊은 슬픔’을 느끼죠. 사라지는 것을 붙들고 싶지만 실패하는 것은 현대인의 공통된 운명입니다.”
그의 설명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구 사진을 쓰다듬던 일이 떠올랐다. 과거 사진을 보며 그 시절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기억도 새록새록 살아났다. 이런저런 장면 위에 어머니와 각별했던 바르트가 사진을 붙들고 ‘카메라 루시다’를 써내려간 환영이 겹쳐졌다.
“바르트에 관심이 많아 강의를 수강했어요. 혼자 책을 읽으면 지식 차원에 머무르는데, 수업을 들으면 바르트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수강생 김민권(31) 씨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김씨의 다음 강의는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강독. 잠깐의 청강으로 그를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주 1회 수업, 8강 온+오프라인 16만 원, 온라인 9만 원. 이설 기자
‘사랑, 죽음, 그리고 사진’ 김진영 씨 지식 소매상 그 이상 내용 전달
“자발적 수강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라 소화력이 좋고 적극적이다. 지식 소매상이지만 그 이상 모티베이션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
한마디 한마디에 인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의가 담겨 있었다. 강사 김진영 씨는 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으로, 10년째 대학과 대안 공간에서 강의 활동을 펼고 있다. 고려대 독문과 석사를 마친 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발터 벤야민을 전공했다. 학교도 아닌데 매번 보충수업을 하는 열혈 강의로 팬이 많다. 인문학적 기질 100%로, 스스로 “도서관 인생을 살았다”라고 말한다.
▼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된 계기와 이유가 뭔가. 대학에 자리를 못 잡았지만, 인문학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본인이 경제적인 구조의 덕을 봐서 혜택을 받은 결과물 모두를 포함한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어서 공부만 하고 살았다. 그 혜택을 사회에 되돌리는 것이 강의의 중요한 목적이다.
▼ 대중인문학 열풍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문학은 전통에 의해 뿌리내리는 것이지, 지금처럼 목적에 따라 부침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독일에서 15년 유학했는데, 그곳은 교육방식 자체가 인문학 전통 아래서 이뤄진다. 자유로운 의견, 자기 판단, 주체 의식은 단기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문학이 현실과 만나는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시장화와 엉켜 비판정신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다.
▼ 수강생들의 면면과 수강 목적은? 연령대와 직업은 다양하다. 여가선용 혹은 지식에 대한 욕구로 오는 분이 가장 많다. 일상이 있지만 이상주의적 욕구를 충족하려고 오는 수강생도 있다. 자기 교양을 쌓으려는 트렌드 영향도 커 보인다. 사실 지식에 대한 욕망은 보편적이다. 하지만 제도교육에서 실용화된 지식을 강요하다 보니 공부하기 싫다는 편견이 생겼을 뿐이다.
국가 운영과 ‘용가리’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몇 차례나 돌고 나서야 건물에 다다랐다. 3월 8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동양학문 교육기관인 ‘동인문화원’ 5층 강의실. 강사 전헌 씨가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첫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강생 연령대는 20대에서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편이지만, 성균관대에서 전씨의 대학원 수업을 듣는 이가 다수였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은 유명하지만 읽기가 어렵다. 정치학 전공자도 독파하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졌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 동물의 이름으로, 책에서는 교회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를 뜻한다.
“리바이어던은 전쟁의 시대에 토머스 홉스가 백성을 위해 쓴 글입니다. 여길 보세요. 1651년 책이 출판될 때 표지에 등장한 그림입니다. 이 안에 수많은 사람이 가득 차 있죠. 리바이어던은 사람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이날 수업에서는 리바이어던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전씨는 책 표지를 벗겨 들고 교단을 누비며 설명해나갔다. 그가 양 주먹을 쥐고 팔을 번쩍 들며 말했다.
“리바이어던은 오른손에 칼,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전쟁하는 칼과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지팡이. 지팡이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하늘의 나라가 땅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지죠.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의 이름을 쓴 건 파격적입니다. 어떤 학부생은 이걸 ‘용가리’라고 부르더군요.”
엄숙하게 경청하던 수강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강의는 마치 유기체 같았다. 전씨는 동서양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리바이어던이 쓰였던 시대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학생들은 갈수록 전씨의 강의에 미혹됐다. 그는 학생들을 향해 “한 학기 동안 쉽지 않은 과제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올봄, 거대한 리바이어던과 맞닥뜨려 고군분투할 수강생들의 미래가 떠올랐다. 강의는 인문학 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칼을 다듬는 역할을, 인문학은 지팡이를 다듬는 역할을 합니다. 한데 오늘날 학문은 전부 칼에 쏠려 있어요. 요즘의 형상은 한쪽 팔만 가진 왼팔 장수와도 같은 거죠.” 주 1회 수업, 한 달에 5만 원. 구희언 기자
‘토머스 홉스:리바이어던’ 전헌 씨 이기적 존재 인간만 얘기해선 안 돼
유학의 요람 성균관에서 서양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전헌(69) 씨가 그 주인공.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그는 2004년부터 객원교수 신분으로 성균관대에서 서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동인문화원에서도 서양 고전을 가르친다.
▼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교재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토머스 홉스는 국가주의의 태동 시기 ‘세상이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전쟁통이 되겠다. 인간은 싸움만 할 줄 아는 존재구나. 하지만 그건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끝없이 알기를 원하는 존재다. 홉스는 자신의 책을 통해 ‘국가는 리바이어던, 즉 용가리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 국가가 돌아가는 데는 이치가 있고, 이를 아는 게 인문학이다’라고 했다.”
▼ 우리 시대 인문학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인문학은 사람 공부다. 요즘엔 인문학에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다 빼고 인간만 이야기한다. 인문학은 인간뿐 아니라 만물을 포함하는데, 인간만 다루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이기적 존재인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니 인문학이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잘해봐야 전쟁이나 하지, 평화를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인문학이 무너지는 거다.”
▼ 인문학의 힘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가족을 출근시킨 뒤 어머니들이 많이 와서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뒤 교실 분위기가 재미있다. ‘어, 집안에 이런 문제가 있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해법이 마음속에 떠오르네’라고들 한다.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애덤 스미스의 책을 읽었는데, 갑자기 내 문제가 풀리더라는 거다. 이게 인문학의 힘이다. 자신의 환경, 처지와 관계없이 마음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4]
잡스를 불러볼까? 샌델을 만나볼까?
안방에서 만나는 해외 강의 동영상 HOT 가이드
변인숙 독립잡지 ‘비로소’ 발행인
대학원생 A씨는 제이크 시마부쿠로의 ‘우쿨렐레 연주’(7분)를 들으며 하루를 연다. 밤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 챕터(55분)를 보며 정치 철학의 세계에 빠져든다. 해외 명강의를 온라인으로 접할 기회가 늘어난 뒤 가능해진 일상이다. 최근 해외 명강의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숙명여대 스노우(www.snow.or.kr), 각 대학의 오픈코스웨어(강의 공개), TED(www.ted.com)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해외 명강의는 언어, 영상,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애플사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와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 세계적 작가 알랭 드 보통 등이 강사로 나선다. 이들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듯, 압축된 시간에 깊은 지식을 풀어놓는다. 이곳에서는 어렵게 느꼈던 순수학문이나 비싼 수강료를 지불했던 예술 강좌를 무료로 접할 수 있다.
3월을 맞아 학교를 졸업하면서 영영 이별했던 시간표를 다시 짜보는 건 어떨까. 우선 본인의 필요에 따라 과목을 선택한 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일주일 분량, 한 달 분량 등의 강의를 다운받아두자. 과목당 러닝타임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시간 내외. 동영상 강의를 볼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한글 강의 녹취록을 다운받으면 된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여러 나라 강좌가 구비돼 외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초심자는 수백 가지 강의 목록에 머리부터 지끈 아파온다. 어떤 방식으로 무슨 강의를 들어보는 게 좋을까.
무료 해외강의 사이트!
1. 한글로 보기 편한 사이트
☞TED(www.ted.com) 홈페이지에 접속한다→우리말 자막으로 보려면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 네 번째 아이콘 ‘Translation’을 누른다→‘Choose Language’가 적힌 네모난 칸을 클릭한 뒤 ‘Korean’을 선택한다→강의 동영상 창에서 다른 언어 자막을 보고 싶다면, 플레이 버튼 아래 ‘Subtitles Available in’을 누르면 된다. 동영상 화면에서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자막을 바로 바꿀 수 있다(한국인 번역자와 동호회가 많아 가장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숙명여대 스노우(www.snow.or.kr) 해외 대학을 비롯해 TED 강의, 국내 강의까지 아우른다.
☞OpenCourseWare(www.kocwc.org·고려대, 부산대, 서울산업대, 인하대, 한동대 참여) 오픈코스웨어 한국어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 가입을 하고 관련 자료를 취사 선택한다.
2. 인기도(별 5개 등급 표시)와 소재별로 보기 편한 사이트
☞KOCW(Korea Open CourseWare·www.kocw.net,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운영) 홈페이지에 접속한다→화면 가운데 ‘해외공개강의’를 누른다→관심 키워드나 교수명이 있다면 ‘공개 강의 검색’ 창에서 검색한다.
3. 기초과학 관련, 전공 노트를 함께 보는 사이트
☞러너스티비닷컴(www.learnerstv.com) 홈페이지에 접속한다→상단 우측에서 세 번째 ‘videos’를 눌러 소재별 강의 동영상을 무료로 다운받는다. 강의 노트는 좌측 하단에 첨부돼 있다. 현재는 영어로 서비스 중. 생물,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국내 학생이 참고하는 무료 사이트.
4. 총집합 정리된 사이트
☞해외 교육 동영상 총집합(www.infocobuild.com) 상단 네 번째 아이콘 ‘Seleted Videos’를 누르면, TED를 비롯한 무료 교육 동영상 강의와 관련 웹 사이트가 한꺼번에 정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세계 유명 석학 강의 총집합(www.academicearth.org)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예일대, MIT 강의 등 수록. 사이트 에디터들이 뽑은 1위부터 10위까지 강의가 ‘Playlists’로 따로 정리돼 있다.
해외 인문학 강의 HOT 10 캐릭터별 추천 가이드!
강좌명으로 TED나 스노우 등에서 검색 가능, 강의하는 이의 저서 혹은 웹상의 강의노트를 교재로 이용할 수 있다.
1. 사람이 되고 싶은 웅녀형 인간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강한 이라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뇌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의 ‘느낌에 관하여’, 예일대 교수 셸리 케이건의 ‘죽음’을 추천한다. 연민이나 행복 등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에 대해 계속 물음을 던진다.
2. 호기심에 이끌리는 앨리스형 일단 TED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관심 키워드를 따라 둘러본다. 클립당 18분 이내로 짧아서 관련 강좌를 연달아 보기 편리하다. 동영상 바로 우측에서 연계 강의를 살필 수 있다. 스노우 트위터(@snoworkr)는 새 강의 정보를 매번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최근 강의 동향을 살피기 좋다.
3. 예술과 사랑에 심취한 황진이형 선호하는 작가 이름을 검색해 동영상을 감상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에 대한 강의나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 인터뷰, 해리 포터 작가 J.K. 롤링의 하버드대 졸업 축사를 볼 수 있다. 예일대 교수 존 로저스가 영국 시인 존 밀턴에 대해 강의하는 동영상(총 24강)이 인기 있다.
4. 저돌적으로 살아가는 돈키호테형 생활의 에너지를 계속 얻을 수 있는 강의를 골라 듣는다.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 등 IT계 두 영웅의 토론, 일대기 등이 TED에 넘쳐난다. 구글의 공동 창립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의 컴퓨터 과학 강의도 인기 있다.
5. 신중함과 고민을 반복하는 햄릿형 언어 선택, 철학적 사색에 대한 강의를 골라 듣는다. 예일대 영문학 교수 애나벨 패터슨의 ‘언어의 힘, 그리고 언어 너머의 힘’은 셰익스피어와 미국 정치문화의 언어 등을 설명하며 언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계적인 석학 자크 데리다의 용서에 대한 해석’은 데리다의 들뢰즈 강의로 2010년 KOCW에 서비스된 후 조회 수가 가장 높다.
6. 행복의 파랑새를 찾는 치르치르와 미치르형 행복과 관련한 심리학·자기계발 강좌를 찾아본다. TED에 가면 ‘마시멜로 이야기’를 쓴 데 포사다를 비롯해 국내에 소개된 자기계발서 저자 강의를 거의 다 볼 수 있다. 선호하는 처세술 책 제목이나 저자 이름으로 검색하면 된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김영사) 저자 대니얼 길버트의 ‘우리는 왜 행복할까요?’, 디자인컨설팅그룹 IDEO의 대표이사이자 ‘유쾌한 이노베이션’(세종서적)의 저자 톰 켈리의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 등이 주목받고 있다. 베스트셀러 ‘학습된 낙관주의’(21세기북스)의 저자이자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 교수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 심리학’도 인기 강의.
7. 직접 돌아다니며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김정호형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해외 동영상 관련 모임에 직접 참가해 오프라인에서도 정보를 공유한다. TED의 매니저, 디렉터, 스태프 등 중요 역할을 맡고 TED 국내 콘퍼런스(www.tedxhwaseong.com 수원, www.tedxhangang.com 이화여대, www.tedxsnu.com 서울대 등)에 참가하거나 스노우 모바일 지식포럼에 참여하는 등 애호가와 함께 활동범위를 넓혀나간다.
8. 우리말을 창조하는 세종대왕형 언어 감각이 탁월하다면 먼저 키워드별로 서치를 하고 직접 한국어로 옮겨서 자막 서비스를 하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강의를 먼저 발굴해 널리 알릴 수 있다.
9. 자식 공부를 권하는 한석봉 어머니형 애넌버그 미디어(Annenberg Media·www. learner.org)에 접속하면, 분야별로 미디어를 활용한 미국 학교 교수법 자료가 공개돼 있다. 교사나 학부모가 참고할 만하다. 각 수업 내용 우측으로는, 자료를 습득할 수 있는 관련 사이트까지 주석처럼 정리돼 있다.
10. 인간과 과학을 한데 공부하는 실학자 정약용형 기술과 인간, 자연과 인간에 대해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강의를 듣는다. 과학 강좌로는 침팬지 박사이자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의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법’,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의 ‘기후변화’ 강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진화생물학 박사 리처드 도킨스의 ‘우주에서 자라난 우리’, 스티븐 호킹의 ‘우주’ 강의 등이 인기다. |
일상으로 오다 인문학 新열풍 05]
인간에 대한 타는 목마름 ‘인문학 바다’로 풍덩
소설가 고승철의 ‘인문학 공부 편력기’
고승철 소설가
1970년대, 엄혹한 독재정부 시절이었다. 자유보다는 빵이 소중하다고 강요하던 시기였다. 그럴수록 자유를 희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 시기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닌 필자는 인문학이 뿜어내는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질식 상태에서 벗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10월 유신’이 단행됐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선거로 뽑지 않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란 사람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선출했다. 어린 고교생이지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교장 선생님은 길고 긴 훈화에서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통령의 영단”이란 취지로 학생들을 설득했고, 친구들은 대부분 곧이곧대로 믿었다.
답답했다. 감수성이 예민했는지 대학 입시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무렵 ‘문학사상’이라는 잡지가 창간됐다. 문학, 철학 등을 아우르는 품격 높은 잡지였다. 당대 최고의 문필가 이어령 선생의 무변광대(無邊廣大)한 평론이 시골뜨기 고교생의 잠자는 영혼을 일깨웠다. 외국 문학계 동향을 훑어보며 무채색의 한국과 달리 알록달록한 피안(彼岸)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대학생이 되니 주변에서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란 잡지가 자주 눈에 띄었다. 흔히 ‘창비’ ‘문지’로 불렀던 이 잡지는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 젊은이들을 흡인했다. 이 잡지들을 애독하면서 학교에서 이런저런 인문학 과목을 수강했다. 교수진은 화려했다. 교양 영어를 맡은 황동규 교수는 시인이자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아들로 유명한 분이었다. 교양 불어의 김광남 교수는 ‘김현’이란 필명의 쟁쟁한 문학평론가. 한국사를 강의한 김철준 교수는 한국고대사 분야의 석학이었다.
시골뜨기 고교생 영혼을 일깨운 잡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필자는 인문학 공부에 재미를 들여 경영학과 전공필수 과목 이외엔 주로 인문학 강좌를 들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문학의 이해’라는 명강의를 듣고 문학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았다. 역사와 문학의 차이를 듣고 그 명쾌한 설명에 무릎을 쳤다. 역사는 특수한 사건 당사자의 행위를 기록한 ‘특수성’을 지니지만 문학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보편성’을 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단다. 그래서 허구인 문학이 사실인 역사보다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공(架空)의 진실’이란 말의 뜻을 깨달았다.
‘꺼삐딴 리’라는 유명한 단편소설을 쓴 작가 전광용 교수에게서 한국 현대소설 강의를 들었다. 사르트르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인 정명환 교수, 바슐라르 전문가인 곽광수 교수의 불문학 수업을 수강했다. 그들은 당대의 석학인데도 젖비린내 풍기는 학부생의 하찮은 질문에 진지하게,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취업과 함께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결혼 이후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정기구독하며 모은 잡지와 청계천 헌책방에서 산 서적을 버렸다. 경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경제·경영 서적을 읽었다. 최고의 경영 성과를 내는 기업의 성공 스토리가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떠올랐다. 소설가가 골방에 쪼그리고 앉아 지어낸 사(私)소설류의 작품은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듯했다. 철학은 공허했고 역사는 승자의 무용담이라는 인식이 들었다.
그러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경제·경영학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그렇게 많건만 제대로 위기를 예견한 사람이 없었다. 2008년 여름에도 그랬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었음이 드러났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수식으로 경제 현상을 설명한 정통파 학자보다는 인간 심리를 연구한 비주류 학자가 잇따라 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경영 한계 절감 … 고전 읽을수록 재미 쏠쏠 필자의 관심도 변했다.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다시 인문학에 탐닉하고 싶어졌다. 어느 문화센터에 개설된 고전강독 강좌에 참여했다. 재야 철학자 강유원 박사가 진행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읽기 강좌였는데 강사의 열정, 수강자들의 진지한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인문학 공부에 재미를 붙여 서울대 인문대의 최고지도자과정(AFP)에 등록해서 6개월간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AFP 주임교수들의 학식과 인품에도 감화됐다. 국사학자 이태진 교수(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논어’ 분야의 권위자인 이강재 교수, 고대 오리엔트 종교학의 대가인 배철현 교수 등이 그분들이다. 대부분이 저명인사인 AFP 졸업 동기생들은 “인사불성!”이라는 건배사를 외친다. ‘인문학을 사랑하면 불가능도 성공으로!’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언어감각이 탁월한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만들었다.
AFP를 마친 뒤 동기생들은 ‘공부 중독’에 빠져 ‘계영계(戒盈契)’라는 동아리를 결성해 몇 년째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중국 철학, 그리스 철학, 대항해 시대, 이집트 문명, 한문 명문장 등을 해당 분야의 권위자에게서 배웠다. 올 상반기에는 노자, 장자를 탐구할 예정이다.
필자는 직장생활에서 물러난 후 대중을 위한 여러 인문학 강좌에 부지런히 참여한다. ‘수유+너머’라는 특이한 이름의 연구소가 개설한 강좌와 세미나의 단골 학생이다. 여기서 의역학(醫易學)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익히기도 했고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철학을 배우기도 했다. 벽초 홍명희의 10권짜리 소설 ‘임꺽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듣는 강의는 무척 흥미로웠다. 이 강의에서 모티프를 얻어 필자는 ‘은빛 까마귀’라는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수유+너머에서 곰숙, 문탁, 채운, 문리스, 도담 등의 닉네임으로 불리는 강사들에게서 그들의 내공을 전수받는다. 지금은 1년 동안 인문학을 두루 섭렵하는 ‘대중 지성’이라는 과정과 미술사, 미학을 토론하는 세미나에 동참하고 있다.
‘문지문화원 사이’라는 곳에서 문학 고전 강좌도 수강했다. 소설가 겸 러시아문학 전문가인 김연경 박사가 진행하는 강좌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파우스트’ ‘성(城)’ ‘페스트’ 등 불후의 명작을 읽고 토론했다. 혼자서는 읽기에 벅찬 두툼한 책을 토론 준비용으로나마 독파하고 나니 스스로 뿌듯해졌다.
필자는 기업체나 사회단체에 강사로 여러 번 초청받았다. 강의 주제는 주로 ‘인문학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다. 몇 달 전 이사를 하면서 서재에 잔뜩 쌓였던 경제, 경영 서적을 버렸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영시스템에 관한 자료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경영 지식의 생명은 너무 짧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2500여 년 전 플라톤이 쓴 ‘국가론’이 요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의 원조 격이라는 사실을 알면 인문학의 오랜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삶, 사랑, 죽음 등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이 가장 절실하게 품는 인문학 화두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인문학의 망망대해(茫茫大海)에 기꺼이 몸을 던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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