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뤼시스>를 읽고
<뤼시스>의 본문은 불과 45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에로스와 필리아라는 사랑, 우정, 친애의 주제를 다룬 최초의 철학서이다. 이후의 플라톤의 <향연>, <파이드로스>,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이들 주제는 반복되고 더욱 깊이 전개된다.
주된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메넥세노스와 뤼시스라는 10대 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소크라테스가 뤼시스에게 "어머
...니와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느냐?"라고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뤼시스가 노예인 가정교사의 보살핌을 받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상기시키며,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 설파한다.
소피스트들은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에게, 약한 자는 강자에게, 병자는 의사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옹기장이끼리, 소리꾼은 소리꾼끼리 적대한다고 한다. 여기서의 친구는 벗이라기보단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논파한다. 병이 건강의 적이니 친구가 될 수 없듯이, 사랑없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설파한다. 오히려 "사랑하는 척하는 자가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자가 그 애인에게서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친구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사랑은 많은 종교와 철학자들이 다루는 주제다. 여기서의 사랑은 남녀 간의 에로스라기보단 필리아의 성격이 강하고, 타인에 대해 유불리의 잣대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범애(凡愛)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접근 방식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이 신앙적이라고 하면, 공자는 인의예지의 사람다운 행동을 해야되는 윤리적이라는데 비해, 소크라테스(플라톤)는 논리적 설득과 논박을 통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파해간다.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익에 따라 집단이 생기고,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 특히 비슷한 입장에서 경쟁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진정 사랑하고 신뢰받는 관계에 목마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때론 경쟁자라고 의식하는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해보는게 어떨까? 같은 처지에 잇는 사람들끼리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상생하며 선의의 졍쟁을 벌이는게 어떨까?
<뤼시스>는 짧지만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고전이다. 이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칸트-롤스로 이어지는 서양 윤리학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분량도 짧은만큼 고전을 처음 읽는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 바로 <뤼시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