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해서 한국인들의 감정은, 우리와 맞서 싸워야 하는 적군이거나, 끼니도 못 때우는 가난한 사람들로 비춰진다. 이는 적개심과 동정심이 섞여있는 양가적인 감정이다. 이로 인해 북한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가 방해받게 되고, 북한에 대해서 언급하는거 자체가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다고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현실과 거리가 먼 외국인들의 북한 연구도, 북한의 핵무기나 군사력에 대한 분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객관적이면서도 심도깊은 통찰을 다룬 북한 연구서가 나왔다. 동의대 교수인 로버트 마이어스 씨의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이다. 우리가 아는 북한은,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의 헌법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삭제하고 주체 사상으로 무장하였다.
'주체 사상'의 역사적 배경은 이렇게 서술할 수 있다.
단군 이래 조선인들은 언제나 같은 피,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그리고 고결한 도덕성을 지닌 한민족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자치를 못마땅해하고 그들의 풍요로운 자연을 욕심낸 외국의 침략자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이 조선민족을 내버려두지 않으려 했다. 중국과 일본, 미국에 이르는 침략 세력들을 연거푸 몰아냄으로써만 조선민족은 지금까지 그 독특한 단일성을 지켜올 수 있었다.
불행히도 유교, 불교, 그리고 다른 유해한 외세의 사조에 물든 나약한 지배계급은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에 맞설 힘이 없었고, 급기야 1905년에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내주었다. 이에 의분을 느낀 대중들이 1919년 3월 1일에 들고 일어나 민족의 독립을 외쳤으나 일제의 총칼에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이 민족을 세계 무대에서 그들이 있어야 할 올바른 자리로 인도할 지도자가 이미 탄생되어 있었다.
- 북한의 조선민족대백과 중에서
조선민족의 순수한 단일성을 상징하는 것은, 공산주의권보다는 게르만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강조했던 나치,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한 군국주의 일본과도 닮아있다. 그리고 김일성은 마치 예수처럼, 구세주가 되어 조선민족을 구원하러 온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북한인들이 김 부자에 열광하고 흐느끼는 모습을, 그들이 어렸을때부터 세뇌당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김 부자의 권력이 대를 이어온데에는, 문화적 배경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인민들이 김 부자에게 넘어간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김일성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둥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이 매우 빈약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마치 어머니같은 자애로운 이미지로 이미지 메이킹을 성공적으로 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필자가 이 책에서 의도하는 바는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 유교, 그리고 전시용 주체사상 이론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북한의 이데올로기는 별로 복잡하지 않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조선인들은 혈통이 지극히 순수하고, 따라서 매우 고결하기 때문에 어버이 같은 위대한 영도자 없이는 이 사악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인종에 기반을 둔 북한 세계관을 굳이 전통적인 좌우 스펙트럼상에 위치시켜야 한다면, 극좌보다는 극우 쪽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사실 파시스트(Fascist) 일본의 세계관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북한에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일 생각은 없다. 이 용어를 이용하기가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다.
-머리말
북한에 친일파가 없었다고 남한 좌파와 미국의 역사가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해방 후 평양으로 이주한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일제와 협력한 사람들이었다. 소설가 김사량처럼 특히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몇몇 인물들은 사실상 서울에서 쫓겨났고, 북쪽은 그런 협력자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1981년에 북한에서 발행된 한 역사책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지난 날 공부나 좀 하고 일제기관에 복무하였다고 하여 오랜 인테리들을 의심하거나 멀리하는 그릇된 경향을 비판 폭로하시면서 오랜 인테리들의 혁명성과 애국적 열의를 굳게 믿으시고 그들을 새조국 건설의 보람찬 길에 세워 주시었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김일성 형제도 중국에서 일본군의 통역관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련 점령, 1945~1948년
1982년에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여 ‘경애하는 지도자’의 직함을 얻고 그 자신이 주도하는 터무니없는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성스러운 백두산에서의 탄생(실제로는 소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 대한 효도, 문화 분야, 특히 영화제작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관련하여 많은 사실이 날조되었다. 외국인들은 부자 간의 권력 승계를 유교적 성향의 또 다른 증거로 보았지만,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보다 한층 더 모성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한 소설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세상 어머니들 중의 어머니이시였다.”
-문화혁명에서 김일성 사망까지, 1966~1994년
반면에 북한의 선전은 지적인 교육 장면들을 아주 싫어한다. 조선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순수하고 선하기에 자신의 본능을 따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흔히 외세나 지주들에 대항해 격렬한 폭력을 휘두르며 지적인 구속의 틀을 깨부수는 것으로 그려진다. 당 간부들은 가르치는 인물이 아니라 양육하는 인물로 나타나며, 책벌레들은 부정적인 인물들로 묘사된다. 한마디로 스탈린주의가 본능보다 지성을 우위에 두었다면 북한의 문화는 그 반대를 지향한다. 그래서 북한의 삶에 어느 정도 동정하는 시각으로 접근한 영국 다큐멘터리가 2004년 평양에서 상영되었을 때, 〈정신의 국가A State of Mind〉(2004)란 제목을 ‘마음의 나라’로 번역했다.
-1. 조국과 신화
김정일이 편히 쉬는 모습은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그의 옷은 소박하고 검소하며 대개는 단조로운 갈색이며, 지퍼로 잠그는 상의와 그에 어울리는 바지를 입는다. 아버지와 달리 그는 절대 정장을 하지 않는다. 화가들은 항일투쟁과 관련 있는 현장에 혼자 와 있거나 흠모의 마음으로 가득 찬 주민들을 마주하는 김일성을, 약간 외로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젊은 김정일을 흔히 그린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김정일이 조선민족을 너무 사랑해 그들에게 자신의 아버지까지 바쳤다는 것이다.
-3. 김정일과 신화
이 글을 읽어보니 반미민족주의를 내세우던 80년대 운동권 일부가 주체사상으로 빠져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북한은, 한국에서 국제 결혼이 빈번하고 다문화가 진행되는 것을 비판할 정도이다. (본인들이나 잘 하시지...)
나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똑같은 유물론(唯物論)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공산주의가 위험한 것은,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가, 정확히는 특권층, 그리고 그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왕조를 중심으로 단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북한 정권의 실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 언급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통일을 말한들, 국민들의 머릿 속에 통일의 개념이 없고,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구호에 불과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통일의 길을 열려면, 지피지기 백전백승, 북한을 알아야 한다. 로버트 마이어스의 책같은 좋은 북한 연구서가 북한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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