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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독후감

김형효의 철학적 사유의 여정 - <철학 나그네>

철학 나그네

 

김형효 교수는 서강대학교 교수와 한국학 중앙연구원장을 지낸, 우리나라의 원로 철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의 루뱅 대학에서 프랑스 철학을 공부한, 대석학이다.

그가 2010년에 <철학 나그네>, <사유 나그네>, <마음 나그네>라는 3부작을 냈는데, 그의 사유의 흐름을 정리한 책이다.

이전인 2007년에는 <마음 혁명>이라는 책을 통해, 이기주의와 도덕주의를 넘은 제3의 길을 제시한 바 있다.

 

이분은, 본래 서양철학에서 시작해서 니체-베르그송-하이데거-데리다로 이어주는 해체주의의 흐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영역을 넓혀가며, 유, 불, 도의 동양 철학에도 깊이 공부하여,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구축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방대한 동서양 사상의 흐름이 명쾌하게 정리되어, 먹구름 속에 가려져 있던 길이 드러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 분의 사유 체계가 방대하고 어머어마하다.

지금부터는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나의 생각을 감히 덧붙여본다.

 

1) 서양이 동양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더 발달한 까닭은 바로 무의식의 본능적 욕망을 이성이란 이름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성의 소유욕은 신의 개념으로 연결되어 절대시되었다. 소유욕이라는 것은 남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 나의 생각 : 소유욕은 남과의 관계를 전제할지 몰라도, 남과의 화합을 부정하는 소유욕도 있기 마련이다. 단지 소유욕과 교환만을 관계의 전제로 보는 것도 일견 타당해보일지 몰라도, 가족 간의 정이나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 의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부족해보인다.

 

2) 욕망은 두 가지로 나누는데, 본능의 욕망과 본성(존재)의 욕망이다. 본능의 욕망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이고 소유욕을 전제로 한다.

본성과 존재의 욕망은 서양보단 동양에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규범성으로 강제되기 보다 자발성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의 나눔을 전제로 한다.

 

-> 나의 생각 : 현대의 동양 역시도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렇지만 의식의 밑바닥에는 동양적인 정서가 흐르고 있다. 밑바닥의 정서가 사회 시스템이나 의사결정에서도 감안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생겼으면 좋겠다.

또한 서구에서 양차 대전 이후 시스템적 한계의 대안으로,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는 다른 사람이나 자연 환경과 갈등보다는 조화를 추구하는 바에 주목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철저한 근대화, 서구화에 집착하여 동양 사상에 주목을 안 했다는 측면이 든다. 

 

3) 스피노자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미 불교의 화엄적 사유, 즉 만물에 불성이 있고 모든게 다 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세기 말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주의도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류 사상사에 있던 차연(differance)의 문제 - 이미 노장 사상과 불교가 다뤘던 - 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 나의 생각 : 깊이 공부는 못 했으나, 그런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김형효 교수의 생각대로라면, 동양은 서양보다 이미 정신적으로 몇 수 앞서서 생각했다는 얘기가 된다.

 

4) 공자의 유학은 안회의 무위(無爲)의 유학과 증자의 당위(當爲)의 유학, 자공-순자의 유위(有爲)의 유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무위의 유학은 맥이 이어지지 못했지만, 당위의 유학과 합쳐져 맹자로 이어진다. 순자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오히려 교육과 예법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무위, 유위, 당위 어느 것 하나로 치우치면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비판적 부정성이 시중(時中)의 도이다.

부처가 空의 초탈을 상징하고, 예수가 초월적인 有(신)의 계시를 얘기했다면, 공자의 사유는 맹맹한 물과 같아, 별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물 같은 존재다. - 김 교수는 공자를 더 높이 치는 것 같았다.

 

-> 나의 생각 : 정말 대가의 혜안이 담긴 탁월한 분석이다. 특히 안회의 무위의 유학을 따로 분리하는 것은, 신선한 시각이었다.

이후에도 김 교수는 - 많은 연구자들이 언급하지만 - 주자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비슷하다고도 언급하는데, 이는 어디에나 있는 초월성(理나 하느님)을 찾기 위함이고, 세상을 도덕적인 의미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라 한다.

만약, 주자학의 관점대로 라면, 시중의 도는 당위의 관점에서 무위와 유위를 조절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김 교수의 3자 균형의 시중의 도는, 주자학적 관점에선 틀리게 된다.

 

5) 철학은 사유의 학문이지 대상의 학문이 아니다. 과학이 아닌 것이다. 철학은, 총제적인 세상 보기의 진리이다.
철학적 사유는 가벼워서도 안 되고 구도적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진지함에 지나치게 빠져서도 안 된다.

선대 철학자를 무조건 변호사가 의뢰인 변호하듯이 변호하지 마라.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시대적인 것'도 아니고, '초시대적인 것'도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통해 얻은 진리는, '어떤 하나의 진리'일뿐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원효나 퇴계 같은 이는, 한국적인 대상을 연구하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온고지신(溫故知新)적 사유를 한 것이다. 그것이 한국 철학이다.

 

-> 나의 생각 : 가슴에 새길 말이고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이 말을 토대로 철학적 사유에 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