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도(道)는 지극히 공정하나 그 기(氣)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 순수하고 박잡함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그 사이에 사사로운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기(氣)의 운행이 교착하여 오르내리고 왕래하면서 어지럽게 얽혀 그 실마리가 천만 갈래이므로 묘하게 응결하여 만물을 이룰 즈음에 만나는 기(氣)가 스스로 순수하고 박잡하고 그릇되고 올바름을 고르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천지의 조화(造化)라 할지라도 이런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음양이 나누어지매 순함과 거스름, 밝음과 어둠이 한결같기 어려움이 있고, 오행이 갖추어지매 많고 적음, 순수함과 박잡함이 일정하지 않음이 있습니다. 한결같기 어려운 기(氣)와 일정하지 않은 운행으로 둘 사이에서 어지러이 교착하여 오르내리고 왕래하면서 제압하여 이기기도 하고 등지고 저버리기도 하며, 기뻐하기도 하다가 공격하여 빼앗기도 하는 등 천만 가지로 변화하여 그 조화의 공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 천지의 큰 덕(德)을 생(生)이라 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사(邪)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음양ㆍ오행의 한결같기 어렵고 일정하지 않은 점으로 말한다면 정(正)만 있고 사(邪)는 전혀 없게 되지 못하는 것 또한 필연적인 형세입니다. 그러므로 인(人)과 물(物)이 태어나 기(氣)를 품수받을 때에 만나는 연(年)ㆍ월(月)ㆍ일(日)ㆍ시(時)가 한결같기 어렵고 일정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혹 맑음과 흐림, 순수함과 박잡함, 치우침과 바름, 통함과 막힘 또한 천만 가지로 한결같기 어렵고 일정하지 않은 것을 어찌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 같은 이가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낳고, 고수(瞽瞍)와 곤(鯀) 같은 이가 순(舜) 임금과 우(禹) 임금을 낳은 것처럼 더러 부모와 연계되지 않은 경우에 대해 선유(先儒)들은 이것을, “실로 천지의 기(氣)가 관통하여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주자의 문인이 묻기를, “기(氣)의 시초에도 맑기만 하고 탁한 것은 없으며, 순수하기만 하고 잡된 것은 없었습니까?” 하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기의 시초에는 본디 맑고 순수한 것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운행(運行)이 제 맘대로 날뛰고 뒤집혀서 오늘에 이르러선 탁해지고 잡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주자대전》에 보이는데, 본문이 기억나지 않아 대략 대의만 들었습니다.
음과 양이 각각 오행을 구비했다는 것은, 예컨대 봄ㆍ여름은 양에 속하지만 달마다 허다한 오행이 있고, 가을ㆍ겨울은 음에 속하지만 달마다 허다한 오행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달[月]이 날[日]에 있어서와 날[日]이 시(時)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각각 오행을 구비했다는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행이 생(生)함에 각각 음과 양을 구비했다는 것은, 갑(甲)과 을(乙)은 목(木)이지만 갑은 양(陽)이고 을은 음(陰)인 것과 같은 것이니, 선유들이 이미 말하였습니다. 음과 양이 각각 오행을 구비한 것은 위에서 운운한 것이 그것입니다.
“사람 중에 혹 오행을 구비하지 않은 이도 있는가”라는 의문은 어찌 그렇게 큰 착각을 하였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오물(五物 오행)을 갖춘 뒤에 만물이 생겨난다.” 하였고, 주자는 말하기를, “어느 것 하나 이 오행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그 가운데 분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오행이 각기 그 성을 하나씩 갖고 있다지만, 물(物) 하나하나도 각기 오행의 이(理)를 구비했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물체를 들어도 모두 이 오행을 갖추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이는 대개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체든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말하는 연ㆍ월ㆍ일ㆍ시ㆍ태(胎)가 모두 금(金)인 사람은, 비록 그 모두가 금이라 할지라도, 그 금 가운데 절로 오행의 기(氣)가 있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쇠[金]를 녹여서 솥을 만들면 온통 쇠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흙[土]을 물[水]에 타서 본을 만들고, 또 나무[木]로 불[火]을 때서 쇠[金]를 녹인 뒤에야 솥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 쇠[金]로 된 기물이 이루어지는 것도 오행을 구비한 것의 작용이니, 다섯 개의 금(金)으로 사람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고(上古)에는 기풍(氣風)이 경박하지 않고 백성의 성품이 순후하여 말하지 않아도 믿고 다스리지 않아도 다스려졌으므로, 스승의 가르치는 도(道)가 후세처럼 갖춰질 필요가 없었거나 어쩌면 관원을 설치하고 교과를 세운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단절되어 전해지지 않아서인 듯합니다. 이런 것은 깊이 의심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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