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독후감-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란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 있었다.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이의 옆에서 우리는 배운다. 태양은 아무에게도 빛을 ‘주지’ 않지만 모두가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그 빛을 받는다.”
이 구절을 보면서 인간에게도 향기가 난다는 말이 생각났다. 인간이 갖고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품격을 만드는 것이다. 명품으로만 품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명품을 입어도 말과 행동이 품위가 없다면, 돼지 목에 진주가 걸린 것이다.
교사의 품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식? 말재주? 교수법? 자동차? 옷? 여기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안성균 선생님은 아무리 개차반 같은 교사라도 따르는 학생들이 있었다고 했다. 못 나 보이는 사람도 자기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작년에 남양주의 모 중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나갔다. 말이 좋아 기간제 교사이지 실상은 땜방이었다. 경험이 많아 일 처리를 잘 하거나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능숙하지 못하였다. 말빨이 좋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 했다. 교과마저도 깊이 공부한 것이 아니라서 실력이 부족했다. 어떤 베짱으로 지원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모르겠고, 어떻게 채용이 됐는지도 신기하다. 생각해보니 많이 부족한 초보운전자가 손님을, 차를 태웠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수업했을 때, 삼일 간은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정신이 없었다. 진지하게 그만 둘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수업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친근히 다가갈수록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당시 문법을 가르쳤는데, 나는 대학에서의 문법 성적이 낮았다. 그래서 내가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쓴다면 왠만큼 문법은 잘 쓴다. 그렇다면 문법이 어려운게 아니라 개념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친구들에게 개념을 쉽고 재밌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보다 용례도 많이 찾아냈고, 세계 명작도 인용해서 스토리로서 아이들에게 연상시키고자 했다. 사투리 동영상과 유머도 보여줬다. 나름 호응이 있었다. 초보운전자가 고개를 잘 넘은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나는 이렇게 가르쳤다.
<종속적 연결어미 수업>
1. 소냐에 의해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수했다 - <죄와 벌>
하면
2. 돈끼호테는 문전박대를 당하는데
할지라도 - <돈끼호테>
기사가 되는 고행을 멈추지 않았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교과서를 펼쳐 읽지 말고, 그날의 날씨나 시사 이슈, 문화 현상 등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흥미를 유도하여, 뇌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화제를 던지고, 수업에 들어갔다. 교과서를 이야기하면서도, 교과서 외적인 부분 - 사회 현상이나 실생활의 모습과도 연결시켜야 한다. 이것이 내 나름의 요령이었다.
마지막 날엔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줬다. 내 평생 잊지못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한다. 마지막에는 박수를 받고 임기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큰 보람이자 긍지로 남아있다. 기간제를 연장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대학원생으로써 장학금도 받아야했고 논문도 써야 했다.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잘 나서 아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던게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형처럼, 오빠처럼 친근하게 대할려고 했다.
어찌보면 내가 SKY대를 나오지 않은 것도, 상명대에서도 하위권의 성적이었던 것에 대해서, 신이 주신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명문대를 들어가 상위권 성적에 임용을 패스했다면, 교만함이 하늘을 찔렀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 자신도 문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정도여서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를 잘 극복하여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 한 달이었지만 이렇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줄은 몰랐다. 올해 추석 때 아이들이 올려놓은 글이다. 아직도 내가 좋게 기억되고 있는데에 대해서 감사하다.
인도의 비노바 바베와 크리슈나무르티 등은 일상이 다 학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사짓는 어머니에게서, 흙벽 바르는 할아버지도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분이 계셨다. 바로 우리 할머니이시다.
우리 할머니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오셨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시고 살림하셨다. 옷이나 음식에 사치하지 않으셨고, 100원과 500원 짜리도 틈틈이 모아두셨을 정도였다. 자신을 위해 편히 산 적이 없으시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이 할머니이시다.
우리 할머니를 모든 가족들이 존경하신다. 비록 작년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나에게 할머니가 주신 가르침이 생생하다.
독후감을 쓰다보니 책 자체보단 책을 통해 끄집어낸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작은 학교’가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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