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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독후감

일그러진 작은 천사 -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노벨문학상 시즌이 다가왔다. 올해는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수상할거라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수상 실패에 그쳤다.

노벨문학상은 사회를 냉철히 분석, 비판하는 작가,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을 남긴 작가들을 선정한다는 평이다.

여기서 소개하고자하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그 범주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The Tin Drum cover.gif

 

<양철북>은 귄터 그라스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영화는 그로테스크하고 호러하기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독특한 상상력을 토대로 세상의 위선을 반어적인 형태로 꼬집기 때문이다.

일종의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이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 현실을 도드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귄터 그라스에 대해서도 소개하자면, 1927년 단치히(현재는 폴란드의 그단스크)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카슈바이(슬라브계민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차대전에 소년병으로 참전, 1959년에 <양철북>을 통해 문단에 첫 선을 나타내고, 이후 단치히 3부작 시리즈와 여러 작품들을 발표한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며 사회를 냉철히 비판하는, 참여적이고 좌파적인 지식인으로 이름나있다. 199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이 사람의 경력에 논란이 되는 것이 나치 친위대(SS) 경력이다. 이는 2006년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고백하였는데, "용기있는 고백"이라는 찬사와 함께 "60년 동안이나 과거를 숨겨왔다."라며 비난을 가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독일 사회가 이로 인해 한동안 시끄러웠다.

내 생각엔 두 가지 견해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늦게나마 그가 고백할 수 있었다는게 다행이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독일은 나치 경력자들을 처벌하고 참회케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극우파들이 활개치는 우리의 이웃나라나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을 찾겠다고 나서는 우리나라랑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단스크(단치히) 지도>

 

<양철북>의 배경이 된 단치히는 독일과 폴란드의 접경지대로,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의 제일목표가 되었던 곳이다.

제2차 대전 중에는 독일이 단치히를 독일화시켰으나 2차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완전히 폴란드령이 되어 오히려 대대로 살던 독일인들이 쫓겨나, 지금은 완전한 폴란드 도시 그단스크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바웬사가 중심이 된 폴란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유럽은 다민족이 공존하는 곳이다. 단치히만 해도 독일인, 폴란드인, 카슈바이인 등이 공존하였다. 국경도 자주 바뀌어 분쟁이 끓이지 않았다. 유고내전을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오스카라는 난쟁이다. 오스카는 나이 서른이 되어도 키가 120cm에 머무르는 난쟁이다. 하지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신은 완성돼있다. 오스카는 세 살 생일 때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껴 성장하지 않기로 한다. 계단에서 일부러 떨어져 더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양철북을 들고다닌다. 누군가 양철북을 뺐으려 하면, 소리를 질러 유리를 부순다. 영화를 보면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스카의 이야기는 오스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시작한다. 외할머니 안나는 항상 네 겹의 치마를 입고 다닌다. 그 네 겹의 치마 속에 외할아버지 요셉을 숨겨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요셉은 방화범이라 불리는, 실은 폴란드 독립운동을 일으키던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그네스는 요리를 잘하는 식료품가게 주인 마체라트와 결혼한다. 그러나 실은, 사촌인 얀 브론스키와 사랑하던 사이였다. 아그네스는 결혼 이후에도 브론스키와 관계를 이어간다. 오스카에겐 두 명의 아버지가 있는 셈이다.

명목상 아버지 마체라트와 진짜 아버지 브론스키. 마체라트는 독일을, 브론스키는 폴란드를 상징한다. 마치 단치히가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서 정체성이 갈리는 것처럼. 마체라트와 브론스키는 어머니 아그네스와 함께 우정을 나누지만, 훗날 마체라트는 나치당원으로, 브론스키는 폴란드 우체국 공무원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되고, 브론스키는 1939년 폴란드 패망과 함께 죽고, 마체라트는 1945년 독일의 패망 시 나치 당 배지를 삼키고 죽는다.

 

그러한 삼각관계 사이에서 오스카가 태어난다.  오스카는 이미 태어날때부터 정신이 성숙돼있는 걸로 설정된다. 오스카는 성장을 거부하는데, 이는 독일이 나치 집권기로 들어가던 시절과 맥을 같이 한다. 오스카의 성장이 멈춘 것은 더이상 독일의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못하고 암흑시대를 들어간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스카는 1945년 독일이 패전하고나서야 성장한다. 99cm에서 120cm로. 하지만 아직도 키작은 난쟁이고, 게다가 등에 혹까지 생겨나고있다. 결국은 정신병원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이는 전후 독일 사회가 과거로부터 나아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나온다.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와 브론스키의 위험한 줄타기같은 사랑을 시작으로, 오스카와 마리아의 어린아이같은 사랑이 나온다. 마리아는 오스카와 동갑으로 정상적으로 성장한, 오스카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다. 그녀는 오스카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마체라트와 결혼함으로써 동갑내기 오스카의 계모가 된다. 오스카는 마리아가 낳은 아들 쿠르트를 마체라트가 아닌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이른 첫사랑은 깨지고, 그는 그후 여러 여자들과 만나지만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 책에서의 성적 묘사는 강렬하여 논란이 되기도 한다. 자세한 걸 알고싶으면 책을 읽어보시길... ^^

 

이 책은 1부,2부,3부로 나뉘어져 있고 시대배경은 1899년부터 1953년까지 양차대전과 나치 시대, 전후 복구기간까지 포괄한다.

혼란했던 시대 상황과 함께 굴절되고 일그러진 인간의 초상을 그려냈다.

 

요새 들어 이 책을 다시 보게 된다. 오스카는 스스로 성장을 거부한다. 어른의 세계 속에 있는 위선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혹여나 나의 내면에도 오스카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 깊숙한 한켠에는 오스카처럼 성장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우리의 무의식 중에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성장통이 크고 현실이 팍팍한만큼 어린 시절로 회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영화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데이비드 베넨, 당시 13세)

 오스카 역의 데이비드 베넨의 성장한 모습(현재 44세)

 작가 귄터 그라스, 오스카역의 아역배우, 감독 슐렌도르프


 
양철북의 명장면 - 오스카가 북을 두들기며 나치의 퍼레이드를 망치는 장면이다 


 

영화 '양철북'에 대해서도 얘기하겠다. 영화 '양철북'은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에 의해 1979년 만들어졌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논란도 컸다.

특히 당시 오스카 역의 아역배우에게 야한 장면을 촬영케했다는 것. 지나친 외설논란이 일어, 미국의 한 주에서는 상영금지되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성적인 묘사를 반어와 풍자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오스카가 자신을 예수라 주장하는 등 신성모독으로 몰리기도 한다.

 

오스카가 1923년생이니 87살일 것이다. 오스카는 지금도 어린 난쟁이로 양철북을 두드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