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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리더십

탁신 -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지니스

1.

최근, 태국에서 새로운 총리가 선출되었다. 이례적으로 여성 총리가 선출됐고, 그녀는 44세의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이다, 그녀는 다름아닌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의 여동생이다. 그녀가 정치입문 두 달만에 총리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빠인 탁신의 후광과 탄탄한 지지층 덕분이라 하겠다.

2006년에 탁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던 중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이후 탁신은 외국을 떠도는 망명객이 되었으며, 탁신의 집권당 타이락타이(TRT) 당은 해산되었다. 이후 탁신을 지지하는 레드셔츠 시위대와 군부, 보수층 등이 주도가 된 옐로셔츠 시위대 사이의 격렬한 다툼으로 태국은 몸살을 앓았다.

이후 평화적으로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친 탁신 세력이 승리하며 다시 정권을 되찾았다. 이제 탁신이 귀국하여 복권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허나 태국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도 불거져 나왔지만 기우에 그쳤다.

이제 태국의 군부는 명분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쿠데타 이전으로 거의 원상회복된 셈이다.

격동의 태국, 어디로 갈 것인가?

 

2.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는 1949년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중국 광둥성에서 건너온 하카족(객가) 화교였다. 그의 집안은 치앙마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문이었다. 탁신 본인은 경찰학교에 들어가 경찰 간부로 있다가 퇴직, 통신사업과 미디어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부를 얻은 탁신은 정치계에 뛰어들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내홍을 겪던 태국 정계에 신선한 샛별로 등장한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탁신은 'CEO총리'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세우며 태국 관계에 강도높은 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외자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경제 성장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탁신의 지지율은 급상승하여 한때는 전체 의석수 500석 중 70%가 넘는 364석을 장악하며 야당의 설 자리를 빼앗아갔다.

 

하지만 이러한 탁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있었다. 정부는 소비를 장려했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저축 사회이던 태국의 가계 부채가 증가했다. 또한 외국 자본 유치도 성공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경제의 중요한 부분인 제조업, 금융업, 서비스업의 주요 기업들이 외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남부의 이슬람교도들을 탄압하는 등 민주주의도 다소 후퇴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탁신 정부의 과오는 잘 드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태국의 서민들은 그를 지지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태국이 역사적으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고, 태국군 병력은 얼마 되지 않은데 장성 수는 미군 다음으로 세계에서 제일 많을 정도로 비효율적인데 기인한다.

태국의 군부는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단지 명분일 따름이다.

탁신은 그들과 달리 뭔가 기대감이 있어 보였고, 구시대의 집권층보단 나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탁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업가, 도시 상인들, 공무원들이 많은데 본래 탁신을 지지했다가, 탁신의 독단적인 정책에 반발하여 나온 사람들이다. 탁신은 "국가는 기업과도 같다.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면서 공무원 사회에 강도높은 개혁을 촉구했는데, 이러한 점이 관료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듯 하다.

바로 이러한 태국의 기이한 사회적 환경이 부자우파 탁신이 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하면 CEO대통령이 서민들의 지지를 먹고사는 셈이다.

 

3.

태국은 정치 갈등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다. 태국의 시위는 정치 문제가 사회와 경제의 발목을 잡게 만들었다.

나의 생각이지만 탁신의 실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민주주의적 절차로 해결했어야 했다. 쿠데타로 인해 사회적 갈등의 폭만 커졌다.

또한 민중들의 의식이 좀 더 깨어있어, 개인을 우상화, 영웅시하는데서 벗어나 잘못된 정책에는 지지를 보내지 않는 비판적, 선택적 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태국은 평화적인 선거로 혼란을 수습했다.

태국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라는 두 열강 사이를 잘 조절하고, 20세기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평화적 중립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태국인들의 지혜가 외교 뿐 아니라 국내 정치와 국민 화합에서도 잘 발휘되기를 기대해본다.

 

탁신

 

그리고 한국에서도 태국의 정치 혼란에 대한 외신은 많이 접했지만, 심도있는 분석은 드물었다.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지니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태국의 이채로운 현상을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솔직히 태국 인명이나 지명이 매우 헷갈렸다. ㅋ

 

한국은 아시아의 일원이다. 태국 등 동남아시아는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아시아 경제권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동남아시아는 관심이 높지 않아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인이 세계시민으로 자리잡으려면, 우리와 밀접한 아시아권의 정세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