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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경영학 독서 감상문

<정의란 무엇인가> 독서감상문

youtu.be/nd9rsE2k770

 

<공리주의에 대한 옹호>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과연 악()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링크된 동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방송의 뒷부분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수색대 4명이 목동 2명을 발견했습니다. 목동 2명은 아마 탈레반에게 미군이 왔다고 고변할지 모릅니다. 그럼 이들을 죽여야 할까요? 미군들은 자비롭게 목동 2명을 살려줬습니다. 그런데...

 

몰려온 탈레반들에게 미군 4명이 포위되었고 3명이 사살되었습니다. 구조대 16명이 탄 헬기마저 격추되어 16명 전원이 사망하고 맙니다.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목동 2명을 죽였으면 미군들이 살았을 일이었습니다. 물론 죄없는 목동 2명을 죽이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나 CEO 입장에선 공리주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이라도 희생을 줄이고 이득이 되는 쪽이라면 그 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가 오게 됩니다.

 

 

<칸트에 대한 비판>

 

칸트는 정언 명령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친구가 숨겨달라고 했는데 칼 든 사람이 들어와서 목에 칼을 들이댑니다. 그래도 칸트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칸트의 논리의 허점입니다. ‘하얀 거짓말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최소 열 살 이하 어린이들에겐 산타가 존재한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

마이클 샌델은 칸트라면 이렇게 말했을거라 합니다.

 

친구가 한 시간 전에 지나갔는데요.” 역시 그도 하얀 거짓말을 합니다.

 

칸트가 기독교계의 미움을 사서 독일의 왕이 칸트에게 종교에 관해서 논문이나 강연을 금지시킬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칸트는 이렇게 답합니다.

 

폐하의 충성스런 신하로서 폐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왕은 늙어서 살 날이 남지 않았습니다. 칸트는 절묘하게 계산한거죠. ^^

 

또 칸트의 허점을 하나 들겠습니다. 아이히만이라고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장으로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숨어살다가 이스라엘의 모사드(국정원)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아이히만은 칸트의 의무를 언급하며, 내가 가장이자 월급쟁이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항변합니다. 아이히만의 궤변에 칸트가 이용된거죠.

<롤스에 대한 비판>

 

롤스의 <정의론>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ㅎㅎ

그만큼 어렵죠. 다만 책 뒤편에 요약된게 있습니다. 그는 마이클 조단이 재능을 타고났다면서 공정하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물론 재능도 타고 났지만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에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겁니다.

마이클 조단이나 호날두, 메시, 류현진, 손흥민, 고진영 등의 몫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것도 합당한 세율에 의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유럽의 의사들이 자신들의 처우가 낮다고 데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축구선수들은 돈을 천문학적으로 버는데 우리는 왜 이러냐고 항의했죠. 호날두나 메시보고 치료하라는 겁니다. ㅎㅎ

 

무지의 베일이란 말도 그럴 듯 하지만, <정의론>이란 책은 1975년에 나온 책이죠.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지금 디지털 시대여서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다 정보검색이 가능합니다. 이제 무지의 베일이 사라지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를 위해 우리 모두가 덕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와 의무 윤리가 결합된다면 아이히만같은 괴물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독재국가나 공산국가에서도 공동체를 명목으로 기본권 제한이 가능합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벤담, 칸트,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시하는 정의에 대한 논리를 제시하는 학자는 구스타프 라드브루흐(1878~1949)입니다. 그는 독일의 법학자이자 법무장관을 역임했습니다.

 

 

<라드브루흐의 정의관>

 

라드브루흐는 도덕을 자연법이라고 합니다. 도덕만이 법의 의무지우는 힘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라드브루흐는 마이클 샌델과 비슷해보입니다.

하지만 라드브루흐는 이렇게 말합니다.

 

법은 정의를 향한 의지이다. 정의란 인격의 고려없이 모두에게 같은 정도로 계산하는 것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고 권리의 평등이 정의인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입니다.

 

<유전자 은행>

 

유전자 은행이 있어서 열성보다는 우성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무지의 베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부자들은 우월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대대손손 낳게 되고, 그렇지 못한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은 우월 유전자를 가지지 못하게 되겠죠. 미남 미녀에다 신체능력도 좋고 지능도 탁월하며 사교술이나 언변마저 뛰어난 우월 유전자를 가진 Super Man, Super Woman이 탄생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룩해야지 선천적인 유전자를 갖고 출발선부터 경쟁이 다르면 안 되겠습니다. 법으로 금지시켜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

 

배에서 네 명이 난파되었는데 한 명을 죽이고 세 명이 살아남았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라면 한 명을 죽이느니 차라리 굶어죽을 생각입니다. 명예롭게 죽을 생각입니다.

 

철학자 다석 류영모(1890~1981)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사는 장사(葬事)를 치르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이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고 몸나에서 벗어나 얼나로 거듭날 것을 역설합니다. 그분은 식사를 저녁 한 끼만 드셨습니다.

물론 이분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보입니다. 식욕이 있어야 인간이 생존가능하고 성욕이 있어야 종족보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식욕과 성욕을 자기가 컨트롤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과 짐승이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범죄자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다르다고 합니다. 제가 다큐링크 영상을 보내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의 경험이 그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뇌 안의 편도체를 조절 못해서 청소년들은 쉽게 흥분이 되고 자극에 약하다고 합니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얘기했듯이 모든걸 효용 내지 유불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결론은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때 인간인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굶어 죽거나 짐승만도 못한 인생인거죠.